▲ 남상욱 (와세다대학 상학학술원 특별연구원)
[경인일보=]1 대 29 대 300이라는 법칙이 있다.

1번의 대형사고가 발생하면 이미 그전에 그와 유사하지만 강도가 작은 29번의 사고가 있었고, 또 그 주변에서는 300번의 사고발생 조짐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미국 보험회사에서 일하던 하인리히(Heinrich)라는 사람이 발견해 그의 이름을 따 '하인리히 법칙'이라고도 불린다.

요즘 유로존의 조짐이 안 좋다.

지난주 국제신용평가사 스탠더드 앤 푸어스(S&P)가 스페인의 국가신용등급을 AA+에서 AA로 강등시켰다. 이미 포르투갈은 A-로, 그리고 그리스는 투자부적격채권(junk bond) 수준인 BB+까지 신용등급이 떨어진 터다. 유로존의 국가재정위험, 즉 소버린 리스크(sovereign risk) 확산 우려가 다시 비상하는 형국이다.

1대 29 대 300 법칙이 여기에도 적용된다면, 세계 경제에 심대할 영향을 미칠 또 하나의 대형사고가 일어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얘기가 된다.

이들 유로국가의 소버린 리스크는 미국발(發) 금융위기에 맞서 재정을 쏟아붓는 과정에서 국가 살림살이가 급격히 나빠지면서 불거졌다.

지난해 이들 국가의 GDP 대비 재정적자 비율은 그리스가 마이너스 12.7%, 포르투갈 마이너스 8% 그리고 스페인 마이너스 11.2%였다. 일반적으로 재정적자 비율이 5% 정도만 되더라도 국가 재정상태가 꽤 좋지 않은 것으로 보는데, 이들 국가 모두 이를 크게 웃돌고 있다.

물론 미국, 일본도 각각 마이너스 12.5%, 10.5%로 금융위기 전보다 재정적자 비율이 크게 나빠졌다.

하지만, 어느 한 국가의 소버린 리스크는 재정적자 규모나 대외채무 정도 등에 의해서만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대외무역수지를 포함해 그 나라의 경제 기초체력(fundamental), 정치적 안정성, 통치구조, 대내외 자금조달력 등이 종합적으로 반영된다.

때문에 그리스나 스페인의 재정적자 비율이 미, 일 등과 비슷하더라도 다른 판단요소가 신통치 않아 이들 나라의 소버린 리스크가 염려되는 것이다.

아무리 조그마한 기업이라도 한번 부도가 나면 그 파장은 크다. 그 회사와 거래하던 금융기관, 채권자, 거래처 모두 큰 피해를 보게 된다. 하물며 국가 부도는 될 바가 아니다. 그 파괴력은 실로 엄청나다. 더구나 세계화 진전으로 국제거래가 융성해진지라 나라 간 부도위험이 전염될 가능성마저 크다.

만약 그리스를 시작으로 유로존 국가들이 도미노처럼 줄줄이 부도가 나면 유로존 경제는 공중분해 될 수도 있다. 이는 기우가 아니다.

비록 독일과 여타 유로존 국가가 나서 국제통화기금(IMF)과 함께 그리스에 앞으로 3년간 1천100억 유로 규모의 구제금융을 지원키로 했다고는 하나 때늦은 감이 없지 않다.

구제금융 수혈이 유로존의 소버린 리스크를 진정시킬지도 불투명하다. 또 구제금융을 받은 후 재정지출 축소, 세수 확대 등 강도 높은 자구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실물경제가 버티지 못하고 죽어버리면 사태는 더 악화된다.

다행히 우리나라는 그리스나 포르투갈 등에서의 외화차입이나 채권보유 규모가 많지 않아, 이들 국가 사정이 지금보다 나빠진다한들 경제적 타격은 제한적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생각지 못한, 또 감지할 수 없는 것들이 순식간에 떠오를 수 있다는 점을 놓쳐서는 안 된다.

우리가 미래에 대처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예측하지 못한 일이 발생할 수 있는 것에 대비하는 것이라는 말콤 글래드웰(Malcolm Gladwell)의 말처럼 가장 중요한 것은 항시 대비하는 것이다.

미래는 그 누구도 알 수 없다. 하지만, 앞으로 벌어질지 모를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는 만큼 안전을 담보받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