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인일보=김명래기자]인천 도심 한복판에 있는 공동묘지가 공원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공연장이 조성되고 산책로가 생겨 시민이 문화 욕구를 충족하고 여가를 즐길 수 있는 공간으로 변하고 있다. 굴포천 발원지인 칠성약수터에서 시작해 묘역 주변을 따라 흐르는 물줄기는 '자연형 하천'으로 모습을 바꿨다. 하천 오염원으로 지목된 무허가 공장들은 다른 곳으로 이전됐다.
지난 달 건립된 만월당(봉안당) 주변에는 화초가 가득한 뜰이 있다. 건물 구조와 외형은 장사시설이라고 생각되지 않을 만큼 세련됐다. 전국 공설묘지 중 처음으로 인천에 조성된 수목장림과 장사문화홍보관은 선진 장례문화를 교육할 수 있는 자원이다.
2007년 부평묘지공원이란 '낡은 이름'을 벗어던지고 공설묘지의 새 틀을 짜고 있는 인천가족공원.
장묘문화 패러다임의 전환을 시도하는 현장에 4일 다녀왔다.
다음 달 인천가족공원 1단계 사업 준공을 앞둔 현장에서는 마무리 공사가 한창이었다.
인천가족공원 초입에 가면 길쭉한 타원형의 소공연장과 마주친다. 언뜻 생각에 '공동묘지 앞 공연장'은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었다.
소공연장을 조성하게 된 이유를 인천시 노인정책과 오병집 과장이 설명했다.
"공설묘지에 공연장이 생기는 건 전국에서 인천가족공원이 첫 사례일 것입니다. 인천가족공원 사업의 제1목표는 '묘지의 공원화'입니다. 소공연장에서는 묘지공원에 걸맞은 문화 행사가 열리게 됩니다. 추모 분위기를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 다채로운 문화 공연을 유치할 계획입니다."
소공연장은 150명이 앉아 관람할 수 있을 크기로 조성됐다. 소공연장 곁에는 분수대와 소규모 광장이 자리잡고 있다. 오는 추석(9월22일)에 소공연장에서 첫 공연이 예정돼 있다.
인천가족공원은 만월산과 광학산이 에워싸고 있다. 인천시는 산등성이를 따라 길이 3㎞의 산책로를 조성했다. 평일 오전 시간이었지만 가벼운 등산복 차림의 시민이 산책로를 따라 걷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느린 걸음으로 산책로를 한 바퀴 도는 데 걸리는 시간은 2시간30분~3시간이라고 한다. 산책로에 오르면 가족공원 전체(106만2천911㎡)를 조망할 수 있다.
산책로 폭은 3.5m로 일반 공원의 산책로보다 넓다. 성인 4~5명이 나란히 걸을 수 있을 정도로 여유롭다. 산책로 바닥은 친환경 소재인 경화토로 포장해 주변 수림과 어울린다. 시는 산책로 주변에 카페테리아, 휴게시설, 체력단련시설 등을 설치했다.
가족공원 입구에서 수목장림까지 이르는 보행로는 '시작·만남', '학습·체험', '건강·치유', '휴식·회복' 등 4가지 주제로 조성된다. 보행로는 구역별 주제에 따라 연못, 야외전시 마당, 조각공원, 수변산책로, 추모동산, 잔디마당, 수목장림, 추모동산 등과 연결된다.
과거 좁은 골을 따라 지저분하게 흘렀던 물줄기는 자연형 하천으로 정비됐다. 폭을 넓히고 하천 기슭에 조약돌, 자연석, 산석으로 호안을 축조해 경관을 개선했다. 부족한 수원(水源)을 확보하기 위해 빗물을 활용한다.
잔디주차장 아래 빗물 500㎥를 담을 수 있는 저류조를 설치했다. 목표 수심은 20㎝다. 500㎥의 물은 한 달 동안 자연형 하천의 유지 용수로 사용할 수 있는 양이라고 한다. 가뭄이 들었을 때는 상수도를 사용하기로 했다.
수질 관리를 위해 하천 곳곳에 낙차보를 설치했고, 침전지(물속에 섞인 흙이나 모래를 가라앉혀 물을 맑게 만들기 위하여 만든 못)와 여과지(상수도에 보낼 물을 여과하기 위하여 바닥에 가는 모래를 깔아 놓은 못)를 조성했다. 오 과장은 "자연형 하천은 생태학습, 휴식, 친수공간 등 다목적 용도로 활용될 것"이라며 "생태하천 주변에 습지원, 수변식물원, 수변쉼터 등을 조성할 계획이다"고 설명했다.
지난 달 3일 건립된 만월당은 유골 3만위를 안치할 수 있는 봉안시설이다. 인천가족공원 입구에서 만월당으로 가는 길에는 다양한 종류의 화초과 나무가 많아 마치 공원같은 느낌이었다. 원형으로 된 3층 건물은 내부가 투명하게 들여다보였고, 건물 앞에는 작은 연못이 조성돼 있다.
만월당 출입구에는 안내기기가 놓여 있다. 고인의 이름만 입력하면 유골이 안치된 위치를 알 수 있게 했다. 안치단과 안치단 사이 너비가 다른 곳보다 긴 게 만월당의 장점이다. 안치단 사이 폭이 좁아 유족들이 불편을 겪는 봉안당이 많은데, 만월당은 3.5~5m의 여유 공간이 있다.
만월당은 풍수지리가의 도움을 받아 위치를 정했고, 만월당이란 명칭은 시민 공모를 통해 선정했다. 어두워지면 만월당에는 야간경관조명이 연출된다. '생명의 빛', '만남의 빛', '영혼의 빛'이란 콘셉트로 6가지 종류의 조명기구가 건물 내외부를 밝힌다.
인천가족공원에는 화교 묘역(2천860기)과 일본인 묘역(51기)이 있다. 인천시는 연수구 청학동에 있는 외국인 묘지(미국 등 11개국) 66기를 인천가족공원으로 이장해 관광자원화하는 구상도 갖고 있다. 각 묘역의 역사를 되살려 외국인 관광객을 유치하겠다는 것이다.
화교묘역은 1884년 남구 도화동에 조성된 것이 남동구 만수동을 거쳐 1989년 현 위치로 이장됐다. 일본인 묘지는 1902년 중구 율목동에 처음으로 조성됐다. 연수구 청학동에 있는 외국인 묘지는 1883년 개항 이후 인천에 머물렀던 외교관, 통역관, 선교사, 선원, 의사 등이 안장된 묘지다.
청학동 외국인 묘역의 경우 외국 대사들이 정기적으로 찾아와 추모행사를 벌이기도 한다. 인천발전연구원은 외국인묘지를 관광자원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연구하고 있다.
'장사시설은 더 이상 혐오시설이 아니다!'
인천가족공원은 공설묘지 중 처음으로 장사문화 홍보관을 조성했다. 장사문화 홍보관은 '장사의 유형', '장사문화의 역사', '세계의 장사문화', '장사문화의 뉴 패러다임' 등을 각종 패널과 영상으로 소개하는 공간이다. '영정사진 체험관', '입관 체험관' 등도 조성됐다. 공동묘지에서 공원으로 새옷을 입으려는 인천가족공원의 비전을 장사문화 홍보관에서 한 눈에 들여다볼 수 있다.
인천가족공원은 1940년대부터 형성돼 현재 약 5만기의 분묘가 조성돼 있다. 인천시는 선진화장시스템 도입, 봉안당 건립, 수목장 조성 등 장례 선진화 사업과 함께 인천가족공원의 공원화 사업에도 힘쓰고 있다. 도심속 혐오시설로 인식돼 온 공동묘지가 공원으로 기능할 수 있을까? 다음 달이면 '인천가족공원의 실험 결과'를 두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