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인일보=오동환 객원논설위원]천안함 희생용사 영결식 이틀 전인 지난 27일 이명박 대통령은 아산 현충사를 참배하고 방명록에 '필사즉생 필생즉사(必死則生 必生則死→반드시 죽고자 하면 살고 반드시 살고자 하면 죽는다)'란이순신 장군의 명언을 썼다. 그런데 충무공의 혼령은 그날 이 대통령의 참배를 몰랐을지도 모른다. 평생 한문만 쓰던 장군에겐 한글 '현충사'가 어딘지, 무슨 뜻인지 낯설어 그곳에 강림(降臨)할 수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顯忠祠(현충사)'란 '충혼(忠魂)이 나타나는 사당(祠堂)'이란 뜻이다. 요즘 정부 홍보 TV 영상물에도 이순신 장군이 13척의 배로 왜선 133척을 물리친 명랑대첩과 함께 같은 명언이 뜨지만 거기엔 '則'자가 아닌 '卽'자로 나온다. 장군은 과연 어떤 글자를 쓰셨던 것일까.

則과 卽은 같은 '곧 즉'자지만 則에는 '법'이란 뜻이 있어 의미가 강하다. 하지만 이순신 장군의 명언은 必生'則'死도 必生'卽'死도 아닌 '幸生則死(행생즉사)'가 아니었나 싶다. '오자(吳子)'라고 하면 중국 춘추전국시대 오기(吳起)의 명저(名著)로 손무(孫武)의 '손자(孫子)'와 함께 쌍벽의 병서(兵書)로 꼽히지만 그 '吳子'의 '치병(治兵)편'에 나오는 명언이 바로 '必死則生 幸生則死'이기 때문이다. '죽기를 작정하고 싸우면 살지만 요행히 살기를 바라면 도리어 패사(敗死)한다'는 뜻이다. 하긴 '죽을 각오'로 싸우는 것이지 '반드시 죽는다(必死)'는 패배의식으로 싸우는 병사와 군인은 동서고금에 없을 것이 아닌가.

죽을 각오로 싸우는 '필사즉생'의 기백이야말로 전쟁에 임하는 군인 정신의 기본이고 그 정신의 제1장 제1과다. '적이시여! 바라옵건대 제발 먼저 공격하시오! 쏘시오!' 따위 어설픈 '송양지인(宋襄之仁)'―송나라 양공(襄公)의 유사하지만 설익은 인도주의는 전쟁에서 딱 금물이다. 1745년 5월 영·불전쟁에서 삭스(Saxe) 원수가 이끄는 프랑스군이 '영군이여, 어서 먼저 공격하시오'로 허세를 부리다가 영국군에게 대패한 예와 2002년 6월의 제2연평해전 교훈은 어금지금 닮은 꼴이다. 기강이 서 있지 않고 주저앉은 군대란 존재가치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