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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븐에듀 수학인강 강사 코시-슈바르츠 부등식, 고등학교 1학년 1학기의 맨 마지막에 배우는 절대부등식에서 가장 중요하다 할 수 있는 부분이다. 하지만 많은 학생들은 코시-슈바르츠에 대해 잘 모르고 있다. 심지어는 코시와 슈바르츠가 다른 사람인 것조차 모르는 경우가 많다.

 코시-슈바르츠 부등식은 프랑스의 수학자 코시가 처음 증명을 했고  독일의 수학자 슈바르츠가 후에 이 부등식을 일반화 하면서 코시-슈바르츠 부등식이라는 이름이 붙게 되었다.

코시는 현대의 수학에 있어 정말 큰 기여를 한 프랑스의 대 수학자이지만, 고등학교 과정에서는 다른 위대한 수학자들만큼 크게 알려지지 않은 것 같다. 오늘은 바로 그 코시에 대해서 이야기 하려한다.

 코시는 지금까지 다뤄온 수학자 중 가장 최근의 사람이다. 코시는 19세기에 활동한 프랑스의 수학자로서 프랑스 대혁명이 일어난 해에 관리인 아버지 밑에서 태어났다. 프랑스 대혁명이 일어난 해였기 때문에 그의 가족은 위험을 피해 작은 마을에서 숨어 지냈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깨어있는 의식을 지녔던 코시의 부모는 코시의 교육에는 열정을 다 했다. 코시는 독실한 가톨릭 신자이던 부모님 밑에서 자라며 그리스어 등을 배우기도 했다. 당시 코시의 이웃으로는 19세기 프랑스의 대수학자중 하나인 라플라스(전편에서 네이피어에게 ‘천문학자의 수명을 늘렸다.’ 라 극찬한 수학자.)가 있었는데 그 라플라스와 교류하며 어린 코시는 수학에 흥미를 느끼고 수학을 공부했다. 그 때부터 수학자로서의 뛰어난 재능을 보인 코시에게 라플라스는 수학의 길을 걷도록 조언을 해주었다. 혁명이 지난 후 세상이 안정되자 코시의 가족은 다시 안정된 생활로 돌아가게 되고 그곳에서 코시는 당시의 또 다른 대 수학자인 라그랑주와 만나게 되었다. 라그랑주역시 코시의 뛰어난 수학적 재능을 간파하여 코시를 아끼게 되었다. 코시는 라그랑주, 라플라스 이외에도 수많은 수학자, 과학자와 친분을 다지며 학업을 계속해 나갔고 여러 가지 논문들을 발표한다. 이 시절 코시는 ‘정다면체는 다섯 개 밖에 없다’라는 것을 증명하기도 하였고 오일러의 정리를 심층적으로 연구하기도 하였다. 그 후 다시 정치적인 소용돌이 속에서 국외로 추방당하기도 하였으나 후에 다시 소르본대학의 교수로 복귀해서 말년을 그곳에서 보내게 되었다.

 코시는 힘든 시절을 보내는 가운데에서도 놀라운 재능을 꽃피웠다. 코시의 대표적인 업적으로는 앞서 말한 코시-슈바르츠 부등식이 있다. 이 코시-슈바르츠 부등식은 절대부등식으로서 실수범위 내에서라면 반드시 성립하는 부등식인데, 오늘날 우리 생활의 경제학과도 큰 관련이 있다. 이 외에도 코시는 다양한 분야에 뛰어난 업적을 남겼다. 그는 30페이지에 달하는 방대한 논문을 한 주에도 몇 개씩 발표할 정도였다. 심지어 프랑스의 학회에서는 코시가 너무나 많은 논문을 제출하였기 때문에 논문의 분량을 4페이지로 제한하기도 하였을 정도였다. 그가 연구한 것들은 현대의 미분 적분학의 기초가 되었고, 복소함수론, 미분방정식, 등등 대학교 과정에서 배우는 많은 분야에 큰 업적을 남겼다. 수학과 관련된 과목을 듣는 학생들이라면 대학교에선 코시라는 이름을 친숙하게 볼 수 있을 것이다.

 코시는 건강도 좋지 않았고 성격도 원만하지 않아서 다른 수학자, 과학자와 많은 마찰이 있었다고 한다. 심지어 아벨은 코시를 ‘미치광이’라고 까지 표현했을 정도이니 그 성격을 알만하다. 하지만 코시는 학문에 대한 열정 하나 만큼은 그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정도였다. 그는 자신이 좋아하는 일이라면 끝까지 파고들었고 엄청난 열정과 집중력으로 위대한 업적을 남겼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열정과 집중력, 이것이야 말로 진정한 천재, 진정한 전문가를 만드는 원동력이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