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으로 보면 우리 사회에서 학교교육이 사회적 지위 획득을 위한 수단으로 인식되기 시작한 것은 초·중등, 고등교육의 학력 체계가 형성된 1920~30년대라고 할 수 있다. 당시 일제는 사람들이 선호했던 의사, 법조인, 교사, 관료, 은행원 등과 같은 주요 직업과 특정 학력을 연계시키는 정책을 폈는데, 이것이 한국인들을 학교로 끌어들이는 동기로 작용하였다. 학교가 계층 상승의 통로로 인식되면서 학력 경쟁은 점차 치열해졌으며, 그 와중에 가정형편은 어렵지만 열심히 공부하여 좋은 대학에 우수한 성적으로 입학한 사례들이 적지 않게 나타나기도 하였다. 흔히 '개천에서 용 났다'는 이야기로 표현되는 이러한 사례들이 언론과 주위 입소문을 통해 회자되면서 빈곤층 부모들도 자녀교육에 대해 큰 희망을 가질 수 있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이러한 현상은 사라져가고 있다. '개천에서 용 났다'는 얘기가 '개천에서 용 써봐야 소용없다'는 말로 바뀌어 씁쓸한 우스갯소리로 되어버린 것이다. 왜 그 '개천 용'이 될 가능성이 이다지 희박해진 것일까? 그 이유야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겠지만, 필자로서는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자녀의 학업성취도와 대학 진학 상황을 결정하는데 있어 힘이 점차 커져가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고 싶다. 실제로 부모의 학력, 소득, 사회적 지위 등이 높을수록 자녀의 학업성취도가 높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국내외 연구들이 적지 않다.
한국개발연구원의 한 보고서에 의하면 빈곤층 가구가 빈곤에서 실질적으로 벗어날 확률은 6.2%에 불과하다고 한다. 이 보고서에서는 그 이유를 빈곤층의 교육비 지출이 상위층에 비해 현저히 적은데서 찾고 있다. 요컨대 고소득층은 자녀 교육에 많은 투자를 하여 자녀로 하여금 높은 학업 성취와 고학력자가 되게 함으로써 그 학력이 사회적 지위 획득을 용이하게 하는데 비해, 저소득층은 반대의 결과를 낳게 됨으로써 교육을 매개로 부모의 사회적 지위가 자녀에게 대물림되고 있는 것이 현재 한국사회의 현실이라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이 계층구조가 고착화된다는 것은 저소득층의 미래 희망이 작아짐과 아울러 사회적 갈등 가능성이 커짐을 의미한다. 이는 또한 잠재력있는 저소득층 자녀들이 제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사장됨으로써 국가 차원의 인적자원 활용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치게 된다. 결국 우리 사회의 잠재력있는 인적자원을 최대한 활용하고 사회통합을 이룩하기 위해서는 가난이 대물림되지 않도록 저소득층에게 실질적인 교육의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이를 위하여 다각도로 정책적 노력을 해야 하겠지만, 어린이 교육에 관심이 많은 필자의 입장에서 두 가지 정도를 제안하고자 한다. 우선, 영유아기의 교육에 보다 관심을 기울여 달라는 것이다. 최근 유아교육에 대한 정부의 관심이 커져가고 있지만, 영유아기의 성장 환경이 이후 지능 및 의식구조의 형성에 결정적 역할을 한다는 점을 고려할 때, 저소득층 영유아들의 환경을 성장에 적합하도록 조성해 주는 교육복지 정책을 더욱 강화할 필요가 있다.
다음으로 성장을 위한 실질적 교육 기회가 될 수 있도록, 무상의무교육의 질을 한 단계 높일 필요가 있음을 강조하고 싶다. 학교에서 정상적인 교육을 받기 위해서는 학비 이외에도 다양한 학습활동 보조비가 소요되며, 건강한 신체를 유지하기 위한 보건복지 비용도 필요하다. 저소득층의 경우 이를 감당하기 어렵기 때문에 그들에게는 학비면제보다 한 단계 높은 교육복지 정책이 요구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