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태순 (변호사)
[경인일보=]어릴 때 읽었던 동화 '선녀와 나무꾼'을 보면 나무꾼이 포수에게 쫓기던 사슴을 구해준 보답으로 선녀가 목욕하는 곳을 알게 되어 선녀의 날개옷을 훔쳐 선녀와 결혼하게 된다. 그렇지만 선녀가 아이 3명을 낳기 전에 날개옷을 주지 말라는 사슴의 경고를 어겨 선녀가 하늘로 승천한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가면서 선녀가 아이 3명을 낳기 전에 날개옷을 주면 하늘로 승천하고, 아이 3명을 낳은 후에는 날개옷을 주더라도 승천하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하였다.

법률가의 시각으로 보면 선녀의 옷을 훔치고 선녀가 하늘로 승천하지 못하게 한 나무꾼은 절도죄와 체포·감금죄로 형사처벌을 받았을 것이라는 것은 별론으로 하고, 아이들을 업고 안고 하면 3명을 데리고 승천하지 못할 리가 없는데 굳이 3명이라는 아이를 선녀가 승천하지 못하는 조건으로 제시한 이유가 무엇인지 술자리에서 농담으로 이야기를 해보기도 하였지만 알맞은 대답을 듣기는 어려웠다. 그러던 차에 누군가가 '선녀라도 아이 3명을 낳으면 이미 선녀가 아니라 아줌마가 되기 때문이다'라는 답을 제시하여 한바탕 웃었던 적이 있다.

검사로 근무할 때에 조사하기 어려운 사건으로 종중간의 재산 다툼 사건, 교회 구성원간의 다툼 등을 들기도 하였지만 직장을 가지지 않고 아이들만 집에서 키우는 가정주부들이 사건관계인인 사건도 그 중 하나로 손꼽기도 하였다. 그 이유는 가족의 보호를 위해서는 사실과 다른 주장도 서슴없이 하기 때문에 객관적인 사실 관계를 토대로 하여 사건을 풀어나가기 어렵다는 점에 있었다.

그렇지만 나이가 들어가면서 그런 엄마가 있기 때문에 가족이 지켜지고, 이런 안정 속에서 가족 구성원들이 발전하며 사회 공동체도 발전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엄마가 냉정하게 자신의 자식들과 다른 자식들을 객관적으로 평가하여 대한다면 다른 아이들보다 부족함이 있는 아이들이 어디에서 사랑을 느끼고 안정감을 느낄 수 있겠는가.

한나라 유방이 항우와의 쟁패에서 이기게 된 원인 중에는 한신과 장량의 공이 켰지만 관중에 남아서 묵묵히 군량과 군병의 보급을 책임졌던 소하의 공도 컸다고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천하가 통일된 이후 한신은 반란을 일으켰다는 이유로 제거되고 장량 또한 죽임당할 것을 예상하고 산속에 숨었지만 소하는 한나라에서 최고의 상국(相國)이 되었다.

얼마 전에 교통사고로 상처한 친구가 지방에 있어 49재도 끝나고 하여 저녁이나 하자고 놀러갔다. 술을 한잔 더 하기 위하여 술집에 가자고 권하였는데, 친구가 이전에 와이프가 살아 있을 때에는 술집에 가서 술 먹는 것이 아무렇지 않았지만 와이프가 막상 없게 되니 술집에 가는 것도 꺼리게 된다면서 거절하여 그냥 그 자리를 마친 적이 있다.

같이 근무하던 사무실의 한 직원은 와이프가 오랫동안 암 투병을 하느라 병원에 오가는 일, 아이들 돌보는 일로 많은 고생을 하고, 결국에는 그로 인하여 상처하는 동안 더욱 야위어 가는 모습을 보고 마음 아파한 적이 있었다.

안전한 바탕이 있다고 여겨질 때에는 그곳에서 더 나아갈 힘을 내어보게 되지만 안전한 바탕이 없을 때에는 더 나아갈 힘조차 모으기 어려운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오래된 집에 있는 가구는 이미 집의 일부가 되어 눈에 띄지 않지만 그 가구를 옮기게 되면 그 자국이 눈에 띄어 허전함이 커지게 되는 것처럼 언제나 집과 함께 있을 것 같은 와이프나 엄마가 없었을 때의 빈 공간은 겪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일인 듯하다.

선녀와 같던 여인이 아이를 낳으면서 아줌마라는 말을 듣게 되지만 결국 그런 엄마의 헌신적인 노력이 있기 때문에 아이들이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여 보면 현재 있는 것을 지키는 것의 가치는 새로운 것을 찾아가는 가치 이상으로 의미있다고 생각한다. 어버이날을 맞으며 나를 키워주신 엄마와 나의 아이들을 키우느라 분주한 와이프를 보며 선녀보다 아름다운 엄마의 모습을 발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