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식사를 마치고 같이 나와서 한참을 갔는데 뒤에서 주인 아줌마의 소리가 들렸다. "여봐요! 계산을 하고 가셔야죠!" 아뿔싸! 우리 일행 중에 아무도 계산을 하지 않고 무심결에 식당을 나오고 만 것이다. 보통 외식을 하게 되면 신자들의 초대를 받아 그들과 함께 하게 되기 때문에 신부들은 습관적으로 외식할 때 밥 값을 내지 않는다. 그러나 신부들끼리 식사를 했으니 습관적으로 아무도 계산을 하지 않은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는 이른바 언론, 검찰, 경찰 분야에 계신 분들이 주로 밥 값을 내지 않고 또 다른 의미에서이겠지만 조폭들도 밥 값을 내지 않는다고들 한다. 그러나 이들은 힘의 원리에서 주로 부탁받는 쪽이라 그런다고 하지만 신부들은 무슨 이유에서 동행인들이 밥을 살까? 그것은 신자들이 신부 수입을 뻔히 알고 있기 때문이다.
신부들의 월급은 지역교구별로 조금의 차이는 있겠지만 60만원 내외이다. 처자식이 없고 사택에서 밥 주니까 이 정도면 적당하다고 생각하여 책정된 액수인 것 같다.
그러나 내 개인으로 보면 참으로 빠듯한 돈이다. 자동차 기름 값으로 반 정도 나가고 나면 책 몇 권 사기도 손이 떨린다. 이렇게 빠듯한 살림 가운데도 나머지 대략 25만원의 여유 돈을 내가 어디에다 쓰고 있는지 관찰해 보았다. 나도 놀란 일이지만 공연장에 갔다가 뒤풀이에 쫓아가서 그 뒤풀이 값을 치르는 데 거의 소모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모자라면 신용카드까지 써 가며 비용을 지출하고 금액이 연체되어 다음달에는 전철을 이용해 가며 갚아 나갔다.
요즘 연극에 관심이 많아서 공연 관계자를 자주 만나곤 한다. 이분들을 만나면서 이분들에게 없는 돈을 쪼개서 밥 값을 자진해서 내곤 한다. 왜냐하면 연극계의 현실이 너무 열악했기 때문이다. 수입은 고사하고 연극을 하기 위해 부업은 당연히 해야 하는 실정이었다. 심지어는 부업을 해서 번 돈을 연극 제작에 기부하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이런 상황에서 연극을 사랑하는 사람의 한 사람으로서 비록 박봉이지만 기꺼이 밥 값을 내고 싶었다.
한 시대의 공연문화 활성화 정도를 보면 그 사회의 문화 수준을 읽을 수 있다고 본다. 이런 측면에서 우리 나라의 문화 수준은 월급 60만원짜리 천주교 신부가 공연문화 활성화를 위해서 뒷풀이 비용을 기부해야 하는 수준이다.
언론계의 기자도 검찰 경찰 조폭에게도 대접을 받는 신부가 기부하는 이 현실을 보면서 몇 가지 제안을 하고자 한다. 요즘 공연문화의 최고 인기는 뮤지컬이다. 그래서 뮤지컬은 그나마 조금 자활이 가능하다고 하지만 이 분야도 몇몇 성공한 작품에 불과하다. 아직도 창작 뮤지컬은 연극 수준과 별 차이 없다. 문화는 먼저 정부가 나서야 한다.
문화의 발전을 위해서는 먼저 정부가 나서야 한다고 본다.
현행 정부의 공연문화 활성화 정책이라는 것이 극단별로 공연이 오를 때마다 예산의 10% 정도 지원해 주는 수준이다. 그나마 정책 당국의 예산 범위 내에서 가능한 일이다.
국가 미래 비전을 생각할 때 정부가 통 큰 결심을 했으면 좋겠다. 첫째 공연 예술인 자체를 지원하는 일이다. 무형문화재 제도를 공연 예술인들에게 확대하여 기초 생활을 보장하자는 것이다. 생활이 보장되어야 문화 예술에 혼을 담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둘째 공인된 예술 단체가 기획한 작품에 대해서는 제작비의 50%를 지원하자는 것이다.
문화에 투자하면 국민의 정서적 수준이 높아진다.
문화 수준이 높은 국민은 비록 가난해도 행복해 할 줄 안다. 이해의 충돌 때문에 계층 간에, 지역 간의 갈등의 최고조를 달리고 있는 요즘 새로운 문화 비전의 제시로 국민 갈등을 해소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