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허동훈 (인천발전연구원연구위원)
[경인일보=]그리스의 재정 위기로 인해 세계금융시장이 흔들리고 있다. 그리스 정부의 재정적자는 GDP 대비 12.7%이고, 총부채 비율이 무려 113.4%에 달한다. 이로 인해 긴축정책과 주변 국가의 지원이 불가피하지만 그리스 국민들이 반발하고 지원의 주체가 될 독일이 소극적인데다 재정 적자가 심각한 다른 남유럽국가들, 특히 스페인으로 위기가 확산될지 모른다는 우려감이 대두되었다. 이에 세계 각국의 주가가 급락하고 그리스의 디폴트 가능성이 커지자 EU회원국들이 7천750억 유로의 안정기금을 마련하기로 하는 등 대책 마련에 나서면서 금융시장은 잠시 진정국면을 보였지만 여전히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충분히 예측 가능한 파국은 막을 수 있는 경우가 많으므로 그리스 사태가 글로벌 금융위기 재판으로 번질 가능성은 낮다고 보아야 한다. 그러나 그리스 사태는 오래 끌면서 유로존의 문제점을 드러낼 것으로 보인다.

그리스 사태의 원인으로는 좌우 막론하고 역대 정부가 파퓰리즘 정책을 폈고 관광과 해운산업을 제외하고는 경쟁력 있는 산업을 키우지 못한 점이 지적된다. 그러나 유로존(EU의 단일화폐인 유로를 국가통화로 도입하여 사용하는 국가나 지역) 가입 역시 큰 원인 중 하나다. 유럽은 하나의 유럽을 지향하면서 경제적으로 다소 뒤처진 국가들도 EU와 유로존에 가입시켰고, 이제 나라별로 사정이 다른데 단일 통화를 쓰면서 발생하는 부작용이 드러나고 있다. 미국 같은 예외가 있지만 일반적으로 어느 국가가 경제사정이 어려워지면 자국 통화가치가 하락하고 그 결과, 수출이 줄고 수입이 늘어 위기극복이 빨라지는 것이 상례다. IMF 외화위기와 글로벌 금융위기 후의 한국경제의 빠른 회복세에는 이 요인이 크게 작용했다. 2001년 이후 유로존 국가의 평균 노동비용은 10여% 증가했지만 그리스에서는 40% 이상 상승했다. 물가가 올라가면 통화가치가 하락하는 것이 정상이지만 유로를 쓰고 있으니 이런 메커니즘이 작동하지 않고 결국 경쟁력 있는 국가인 독일은 수출이 늘어났지만 번 돈의 일부로 그리스를 지원해야 하는 상태에 처하게 되었다.

유로존에 가입한 상태에서 그리스가 위기를 벗어나려면 긴축정책뿐만 아니라 장기간에 걸친 디플레이션 즉 물가와 자산가치, 임금 수준의 하락이 불가피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일시적으로 유로존을 탈퇴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는데 그 역시 유로화의 신뢰 추락 등 부작용이 예상된다. 사실 그리스는 경제규모가 작아서 문제가 되더라도 세계경제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그러나 위기의 한 편에 경제적 격차 및 여건 차이가 있는 나라들이 단일 통화에 묶여 있는 유로존의 문제점이 있으므로 유로화에 대한 신뢰가 떨어지고 그 결과 금융위기의 주범인 미국의 통화인 달러의 가치가 상승하고 있다. 달러에 연계되어 있는 위안화의 가치도 상승해서 중국의 유럽수출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중국은 미국채 비중 축소를 모색하면서 이를 대미외교의 지렛대로 삼으려 했지만 그리스 사태로 이마저도 힘들게 되었다. 일본은 국가 신용등급 하향 가능성이 제기될 정도로 부채 문제가 심각하므로 엔화 역시 불안한 구석이 있다. 그 결과, 아이러니하게도 금융위기 여파로 마구 찍어낸 달러가 안전자산이자 기축통화로서의 지위를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는 남유럽 국가들과의 교역비중이 낮으므로 별다른 영향을 받지 않을 것이라고 정부가 주장하지만 이번 사태는 그리스만의 문제가 아니라 유로존의 문제이므로 그 영향권에서 자유롭다고 할 수 없다. 당장 국내 금융시장에서 비중이 큰 외국인 자본이 민감하게 반응을 하고 있고, EU는 우리에게 중국 다음으로 큰 시장이고 중국의 대 EU 수출이 위축되면 우리의 대 중국 수출도 우회적으로 영향을 받게 된다. 세계화는 분명 각국에 규모의 경제와 비교우위 등을 통해서 많은 도움을 주지만 역으로 타국의 위험도 직간접적으로 떠안게 만드는 부작용이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EU는 이상적인 목표를 갖고 유로존을 출범시켰지만 부작용에 시달리고 있다. 모든 것이 다 좋은 제도는 없는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