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륵' 신세였던 이동국(31.전북)의 최종 엔트리 낙점은 한국의 월드컵 출전 사상 첫 원정 16강 진출 목표에 약(藥)이 될까 아니면 독(毒)이 될까.
허정무 감독은 1일(한국시간) 예정됐던 2010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 최종 명단 23명을 발표하면서 3명의 `살생부' 명단에서 이동국의 이름을 부르지 않았다.
`비운'의 꼬리표를 달고 다녔던 `라이언킹' 이동국이 남아공의 희망봉으로 가는 티켓을 얻는 순간이었다.
허벅지 부상이 완전히 회복되지 않아 최종 엔트리 발탁 여부를 놓고 논란이 일었던 이동국을 선택한 허정무 감독의 내심은 다양한 공격 옵션에 대한 갈증 때문으로 보인다.
그동안 박주영(AS모나코)과 투톱 호흡을 맞춰왔던 이근호(이와타)가 깊은 슬럼프에서 헤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근호는 지난해 3월28일 이라크와 친선경기를 끝으로 15개월 넘게 골맛을 보지 못하는 지독한 득점 부진에 시달렸다. 경기력을 좀처럼 끌어올리지 못하는 이근호에게 기회를 주는 대신 버리는 카드를 택한 것이다.
간판 골잡이 박주영(AS모나코)이 부상을 털고 상대 골문을 열어줄 해결사로서 활약 기대를 부풀리고 있지만 박주영만으로는 2%가 부족하다는 게 허정무 감독의 판단이다.
애초 이동국과 공격수 한 자리를 놓고 경쟁할 것처럼 보였던 이승렬(FC서울)은 지난 16일 에콰도르와 평가전 때 선제 결승골을 터뜨리며 허정무 감독에게 강한 인상을 심어줘 월드컵호에 승선하는 행운을 잡았다.
이동국 발탁 논란의 초점은 몸 상태가 100%까지 올라오지 않았음에도 상당한 위험 부담을 감수하면서까지 그를 남아공에 굳이 데리고 가야 하느냐에 맞춰져 있다.
보름 전 에콰도르와 평가전 때 허벅지를 다친 이동국은 예비 명단 26명에 들어 오스트리아 전지훈련에 동행했지만 이후 실전 경기에 한 번도 투입되지 않았다.
이동국은 24일 일본과 친선경기는 물론 30일 벨라루스와 평가전에 교체 멤버로도 포함되지 않은 채 관중석에서 경기를 지켜봐야 했다. 월드컵을 코앞에 둔 시점에서 재활 훈련 중인 선수를 선뜻 월드컵 대표로 뽑는다는 건 쉽지 않은 결정이다.
물론 지난해 K-리그 득점왕을 차지한 이동국이 올해 들어서도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에서 득점 행진을 펼치는 등 부활에 성공하며 책임감과 투지, 집중력이 몰라보게 좋아진 건 높게 평가할 만하다.
그럼에도 이동국이 6월12일 그리스와 월드컵 조별리그 1차전에 출격할 수 있을지는 허정무 감독마저 비관적으로 보고 있다.
허정무 감독은 "(그리스전 출전이)다소 힘들겠지만 두 번째 경기부터는 가능하다고 메디컬, 피지컬 쪽의 의견이 모아졌다. 1주후부터는 100% 팀 훈련이 가능하다는 소견이 나왔다"며 발탁 배경을 설명했다.
결국 6월17일 아르헨티나, 같은 달 23일 나이지리아와 조별리그 2, 3차전에 활용하려고 이동국을 뽑았다는 이야기다.
그리스전까지 한 달 넘게 실전경기에 한 번도 뛰지 않은 선수를 세계 최강 공격수들이 즐비한 아르헨티나, 최고의 탄력과 스피드를 자랑하는 나이지리아 경기에 전격적으로 기용한다는 발상을 선뜻 이해하기 어렵다.
타깃형 스트라이커로서 상대 수비수를 달고 다니는 한편 헤딩으로 득점 찬스를 만들어주는 건 이동국의 장점이지만 그가 월드컵에서 자신을 낙점한 허정무 감독의 기대에 부응할지는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