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인일보=목동훈기자]나근형은 1939년 8월 강화에서 태어났다. 1남2녀 중 막내다. '외아들'이라고 부모님으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고 자랐다.
여섯 살 때부터 천자문을 배웠고, 초등학교(당시 국민학교)에 입학해 한글을 뗐다. 한글을 알면서부터 책을 좋아하게 됐다고 한다. 나근형의 집은 부자였다. 하지만 초등학교 5학년 때 6·25전쟁이 발발해 가정 형편이 어려워졌다. 강화중학교에 입학해 10㎞가 넘는 거리를 도보로 등·하교했다. 걷는 것이 너무 힘들어 학교에서 3㎞ 정도 떨어진 곳에서 자취를 했다.
나근형은 인천고를 졸업한 뒤 서울대 사범대 수학교육과를 나왔다. 가정 형편이 넉넉하지 못했던 나근형은 교사의 길을 선택하게 된다. 아버지의 권유가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나근형의 원래 꿈은 물리학자였다. 물리 과목을 담당하던 고3 담임 선생님의 권유로 수학교사를 하게 됐다고 한다. 당시 취업난도 심각했고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이 좋았다고 한다.
나근형은 김포여중, 동인천고, 제물포고, 하성종합고, 인일여고 등에서 학생을 가르쳤다. 제물포고 교감, 부원중 교장, 인일여고 교장, 인천시교육청 중등교육국장·교육국장 등도 지냈다. 나근형은 정년(2001년 8월)을 한 달 정도 앞둔 시점에서 인천시교육감에 당선된다.
그는 교육청의 '권위주의'를 없애기 위해 노력했다. 인사를 할 때도 공정성을 높이기 위해 추천을 받고 투표도 했다고 한다. 나근형은 "남들은 교육청이 권위주의적이라고 하지만 그렇지 않다"며 "지금은 장학사가 학교를 방문해도 장학사가 왔다갔는지도 모른다"고 했다. 또 "사람의 아이디어는 한계가 있다"며 "직원들이 낸 아이디어를 정책 수립에 반영했다"고 했다.
'학급당 학생 수 감축' 등에 힘써 왔다는 평가도 받고 있다. 당시 인천은 '콩나물 교실' 현상이 심각했다. 나근형은 교육감으로 있던 8년 동안 120개 학교를 지었다.
나근형은 지난해 7월15일 퇴임했다. '3선 도전'을 두고 많은 고민을 했다고 한다. 나근형은 "당시 교육감 출마자로 거론됐던 사람들에게 인천교육을 맡길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 출마를 결심했다"고 말했다. 나근형은 인천교육을 아끼고 사랑하며 40년 넘게 일해 왔다. 그래서 그 누구보다 인천과 인천교육을 잘 안다고 자부한다. 나근형은 국민훈장목련장, 홍조근정훈장, 세계자유상, 청소년대훈장, 효도대상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