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래서 이즈음의 상황이 더 답답하게 느껴진다. 전쟁이 발발하는 계기들이란, 대부분 우연적이고 국지적인 충돌들 때문이다(세계대전의 시작은 언제나 누군가가 발사한 총 한 발 때문에 비롯되었다). 그런 우연과 충돌을 제어해 주고 예방하는 것이 국민으로부터 권력을 이양받은 자들의 몫일 텐데, 작금의 모습은 어쩐지 그 반대의 경우로만 가고 있는 모양새다. 제어와 예방을 제대로 하지 못한 군 수뇌부들은 당당하고, 정부와 여당은 발 벗고 나서 국민의 불안감을 증폭시키고 있는 형국이다. 이런 역전된 상황 때문에 국민은 의심하고 신빙성 없는 괴담들만 흉흉하게 퍼져나가고 있다. 천안함 사건의 처리 과정만 보아도 그렇다. 정부에서 아무리 과학적인 증거라며 수차례 기자회견을 열고 발표를 해도, 왜 그것이 대다수 사람들에게 사실로 받아들여지지 못하는 것일까?(참고로 얼마 전 기자협회에서 발표한 기자들에 대한 여론조사에서, 정부의 천안함 조사 발표의 불신은 41%에 달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테지만, 크게 두 가지 사안때문에 그러할 것이다. 하나는 작전에 실패한 군 수뇌부가 조사의 주체가 되었다는 점이고, 또 다른 하나는 발표 시점의 문제일 것이다. 만약 이 정부의 책임있는 당사자들이 천안함 사태 직후 즉각 군 수뇌부를 교체하고 사건을 조사했다면 지금 같은 불신에 시달리진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조사 발표 시점을 지방 선거 이후로 미루었다면, 그 신빙성은 더 높아졌을 것이다(이건 너무 속이 뻔해 보이는 시점이었다). 하지만 정부는 그러하질 못했고, 그래서 불신을 스스로 자초했다. 더불어 이 정부가 그동안 여러 차례 해왔던 '말 뒤집기'의 사례들이 겹쳐, 불신의 폭은 더 넓어지고 광범위해졌다. 그러니, 아무리 '과학'을 강조해도, '과학'이 먹히지 않는 것이다. 표 때문에 '세종시' 문제를 그렇게 뒤집었으니, 이번 역시 표 때문이지 않겠느냐, 이런 공식이 설득력 있게 통용되는 것이다.
어쨌든 이제 선거는 끝났다. 칼럼을 쓰고 있는 이 순간, 선거의 결과가 어떻게 나오게 되었는지 알 순 없지만, 바라는 것은 오직 하나뿐이다. 선거 종료를 기점으로, 이 송곳 같은 긴장 상태가 다소 누그러지길, 그 마음 하나 뿐이다. 어느 영화 제목처럼 불안은 영혼을 잠식하는 것이 맞다. 더불어 불안을 조장하는 권력들이란, 대부분 불신의 늪에 빠져 있는 경우들도 맞다. 영혼을 잠식당하지 않은 국민만이 권력을 올곧게 감시할 수 있는 법이다. 그것이 또한 권력자들만을 위한 전쟁을 막는, 유일한 국민의 길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