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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을 공부하는 학생들 중 수학에 대한 교양서적을 읽어본 학생이라면 누구나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에 대해 들어보았을 것이다.
“세 제곱수를 두 개의 세제곱수의 합으로 나타나는 것이나, 네제곱수를 두 개의 네제곱수의 합으로 나타내는 것이 불가능 하다. 일반적으로 n 제곱 수에 대하여 두 n 제곱수의 합으로 나타내는 것은 불가능 하다.”
‘나는 이 정리를 증명할 아름다운 방법을 생각해 냈으나 여백이 없으므로 서술하지 않는다,’ 위 내용은 디오판타스(Diophantus)의 '산술(Arithmetica)' 에 페르마가 여백에 써 놓은 주석이다. 이 문제는 후에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Fermat's Last Theorem)' 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얼핏 보면 매우 황당한 페르마의 이 서술이 긴 세월동안 많은 수학자들을 괴롭혔다. 많은 수학자들이 도전과 실패를 반복했고 마침내 1993년 앤드류 와일스에 의해 해결이 되었다. 그리고 수학계의 정밀한 검토 끝에 1994년 9월에 그의 증명이 옳음이 밝혀졌다.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가 나올 수 있게 해준 고대 그리스의 수학자, 디오판토스가 바로 오늘의 주인공이다.
디오판토스는 지난 번 칼럼에서 소개한 에라토스테네스가 그랬듯 고대 그리스 시대에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에서 활약한 수학자로서 정수를 계수로 가지는 방정식(디오판토스 방정식)에 대한 폭 넒은 연구를 하였던 수학자이다. 그는 이러한 자신의 연구내용을 아리스메티카라는 이름의 책으로 정리하여 출간하였다.
디오판토스가 활약하던 시절은 너무나도 고대이기 때문에 실제 그의 수학적인 업적들 중 지금까지 전해지는 것은 그리 많지 않다. 그의 주요 저서인 산수론은 총 13권이었다고 전해지는데 현재 현존하는 건 6권에 불과하다. 그러나 6권 밖에 없음에도 수론 및 대수학의 걸작으로 해석학, 정방정식과 부정방정식의 처리 등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디오판토스는 고대 그리스 시대에 활약한 수학자라는 사실만 알려져 있을 뿐 그의 생몰년도가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다. 하지만 그는 생몰년도가 정확하지 않은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게 그의 생애가 84년 이었다는 것은 알려져 있다. 그것은 바로 디오판토스가 태생적으로 수학자 답게 그의 묘비에도 수학적인 문구를 이용해 그의 생애를 기록했기 때문이다. 그의 묘비의 일부를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지나가는 나그네여, 이 비석 밑에는 디오판토스가 잠들어 있는데 그의 생애를 수로 말하겠소. 그는 일생의 6분의 1은 소년시대였고, 일생의 12분의 1은 청년시대였으며, 다시 일생의 7분의 1을 혼자 살다가 결혼하여 5년 후에 아들을 낳았고, 그의 아들은 아버지 생애의 2분의 1만큼 살다 죽었으며, 아들이 죽고 난 4년 후에 비로소 디오판토스는 일생을 마쳤노라’
이렇게 기록되어있는 그의 묘비를 디오판토스가 생전에 사랑하던 간단한 방정식을 세워 계산해보면 그의 나이는 84세로 나오게 되고, 그렇기 때문에 출생년도와 사망년도가 불분명함에도 불구하고 그의 생애가 이토록 명확하게 드러나는 것이다. 이러한 아름답고도 그의 생애를 함축하고 있는 수학적인 문장들을 묘비로 사용하다니, 그는 역시 수학을 진정으로 즐기던, 뼛속까지 수학자인 사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