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동권 (경인교육대학교 총장)
[경인일보=]우리나라 교육의 특징으로 과열 학력 경쟁과 입시 위주 교육이 자주 언급되고 있다. 상급학교 진학 단계에서 벌어지는 학력 경쟁이 우리 역사속에서 등장한 것은 언제부터일까? 최근 이와 관련된 연구들이 조금씩 축적되고 있는데, 이들 연구에 의하면 대체로 1920년대와 1930년대를 거치면서 이러한 학력 경쟁과 입시 위주 교육이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 시기에 학력경쟁 체제가 조성된 배경에는 우선 학력과 직업을 연계시키는 일제의 정책과 실력양성 운동이라는 사회적 분위기가 부추긴 진학 열기가 있었다. 일제는 당시 법조인, 교사, 의사 등과 같은 선호 직업을 학력에 연계시키는 정책을 폈는데, 이것이 사람들을 학교로 끌어들이는 주요 계기가 되었으며, 이에 힘을 기르기 위해서는 배워야 한다는 실력 양성의 필요성이 학교에 대한 수요를 더욱 증가시키는 역할을 하였다. 그리하여 많은 사람들이 학교로 몰려왔지만, 당시 학교는 이들의 욕구를 모두 충족시킬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1910년대까지만 해도 일제는 한반도에 대학과 같은 고등교육기관을 설립하지 않았으며, 초등과 중등교육기관마저도 그 수업연한을 짧게 하고 교육 과정도 저수준의 실업교육 위주로 운영하였다. 그러던 것이 1920년대에 들어 초·중등교육의 수업연한 연장과 교육과정 개편, 그리고 경성제국대학의 설립이 이루어지면서 초·중등교육과 고등교육이 연결되는 학력체제 즉 학력의 사다리가 만들어졌다. 학교로 몰려온 사람들은 이러한 학력의 사다리를 서로 오르려고 하였다. 그런데 일제는 중등과 고등교육기관 설립을 억제하는 정책을 폈기 때문에 상급학교로 올라갈 때마다 학력의 사다리가 급격히 좁아지는 병목현상이 발생하였고, 이에 따라 치열한 학력경쟁 상황이 벌어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런 연유로 등장한 학력 경쟁은 개인 사이뿐 아니라 학교간의 경쟁으로도 나타났다. 이는 지금도 그러하듯이 당시에도 학교의 명성이 상급 학교 진학 성적에 따라 좌우되었기 때문이다. 학교에서는 학생들의 상급학교 진학 성적 향상을 위한 소위 입시위주 교육의 양태, 이를 테면 비입시 교과목의 배제나 축소, 입시 주요 과목의 수업시수 확장 등과 같은 파행적 교육 과정의 운영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반복 학습을 통한 지식의 암기가 강조되면서 인성교육이 실종되었다는 비판이 일기도 하였으며, 과외학습이나 자율학습 등이 성행하고, 학교별 또는 학교연합 모의고사가 실시되기도 하였다. 필자의 세대가 대학 입학을 준비할 때도 흔히 겪었던 이러한 교육의 모습이 1920년대와 1930년대 학교 현장에서 형성되었던 것이다.

이와 같은 학력 경쟁과 입시 위주의 교육이 세 번의 세대를 거쳐 진행되면서 우리의 교육을 특징짓는 핵심 용어가 되었다. 나는 이러한 학력 경쟁과 입시 위주 교육이 이제는 다음과 같은 점에서 반성적 성찰의 대상이 되어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

첫째, 만연된 학습 소외현상의 문제이다. 학습이라고 하는 것은 자신의 성장을 도모하는 일련의 활동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그 과정이 보람있고 즐거운 과정이 되기보다는 육체적, 정신적 건강을 해칠 정도의 지나친 욕구 유보와 인내심을 강요하고 있어 일종의 극기 훈련 과정처럼 되고 있다. 이런 이유로 많은 학생들이 학습활동에서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소외되어 있는 것이 우리 교육의 현실이다.

둘째, 입시 도구적 교과 인식의 문제이다. 국어, 영어, 수학을 주요 과목으로 보고, 단기간 암기로도 고득점이 가능하다는 이유로 사회와 과학을 암기 과목으로 보는 일제 강점기로부터의 전통적 인식의 지속은 바람직하지 않다. 입학시험과 관련하여 교과의 중요성과 의미를 평가하려는 이러한 태도는 학생들이 성장해야 할 방향과 목표는 무엇이고, 그 목표의 달성을 위해서는 어떤 교과를 어떤 방식으로 어느 정도 학습해야 하는가에 대한 교육 본연의 논의와 인식을 생략하고 있다는 점에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제는 교과 내용이 자신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도 모르면서 단지 시험에서 좋은 점수를 얻기 위해 인내하는 학습자가 아니라, 자신의 성장과 관련하여 교과의 의미를 이해하고, 즐겁고 보람있게 공부하는 학습자들이 넘치는 학교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