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욕에 헤르메스가 산다 =한호림, 웅진지식하우스, 480쪽, 1만6천500원.

[경인일보=김선회기자]치명적인 약점을 뜻하는 '아킬레스 건', 그리고 무엇이든지 막는 최첨단 방어 군함을 뜻하는 '이지스 함', 무엇이 들었는지 모른다는 의미로 쓰인 '판도라의 상자' 등등은 모두 그리스 신화에서 나온 말이다. 어디 그뿐인가, 요즘 너도나도 쓰는 '멘토'라는 말, 여름마다 유행하는 '아폴로 눈병'이나 울리면 일단 피해야 하는 '사이렌 소리', 단어 뒤에 곧잘 붙여 긴 여행을 뜻하는'오디세이', 얼마 전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한 '미네르바 논객 사건', 그리고 유명 스포츠 상표인 '나이키' 등 우리가 부지불식간에 흔히 쓰고 있는 이 많은 단어들 또한 알고 보면 모두 까마득한 옛날부터 전래되어온 그리스·로마 신화에서 유래한 것이다.

'뉴욕에 헤르메스가 산다'는 밀리언셀러 '꼬리에 꼬리를 무는 영어' 저자 한호림이 30년간 모은 2천여 장의 보물 같은 사진과 함께 신화 지식을 '몽땅' 공개하는 책이다. 한씨는 디자인대 대학 교수로 한창 한국에서 잘 나가다 오로지 다른 곳에서 새로운 인생을 살아보고 싶다는 일념으로 캐나다로 이민을 갔다. 그곳에서 그는 20년 넘게 서양인들과 함께 살면서 그들의 역사와 생활, 문화, 그리고 언어에 뿌리 깊숙이 숨어 있는 그리스·로마 신화의 흔적들을 탐구해 왔다.

비단 서양뿐만 아니라 아시아의 도쿄에서도, 서울에서도, 이슬람 지역인 이스라엘이나 남미의 페루에서조차 멋진 풍광보다 거기 살아 숨 쉬고 있는 신화들의 흔적이 먼저 보였다. 그렇게 지구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채집한 조각들을 매일 들여다보면서 연구하고 얼키설키 짜 맞추고 서로 연결하다 보니, 그동안 가슴에 품어왔던 호기심과 궁금증들이 신기할 정도로 하나둘씩 풀리기 시작했다.

이 책은 그리스가 어디 붙었는지도 모르던 까까머리 소년이 노련한 신화 채집가가 되기까지의 수많은 시행착오와 깨달아 가는 과정이 담긴 감동적인 성장기록이며, 독특한 심미안을 지닌 그래픽 디자이너로서 채집한 아름다운 조각 작품과 미술, 건축, 간판, 풍경이 어우러진 세련된 디자인 책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