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일본에서는 통과의례 문화가 빠르게 변하고 있다. 사망 후 24시간이 경과하면 간단히 장례의식(직접장)을 치르고 곧바로 화장에 들어간다. 제례(祭禮)도 매우 간소할 뿐 아니라 때론 의식마저 생략하는 경우도 있다. 참례인원도 고인의 가족과 친인척 약간명이 전부이다. 장례비는 관값, 운구비, 꽃값, 인건비 정도로 10만~30만엔(약 130만~400만원) 정도이다. 직접장이 차지하는 비율은 일본 전국평균 5%정도인데 도쿄에서는 20~30%에 이른다. 결혼풍습도 마찬가지이다. 신랑, 신부가 반지 등 약간의 예물만 교환하고 혼인신고로 결혼식을 대신하는 것이다. 민폐(民弊)를 매우 꺼리는 일본인 특유의 기질 탓이기도 하나 초미니 핵가족화 및 고령사회에 부합하는 것이어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한국사회는 어떠한가. 장례식장은 점차 대형화되고 럭셔리해지며 호텔결혼식이 일상화되었다. 서울 강남의 S, J병원 장례식장은 밀려드는 문상객들로 특수를 누리고 있으며 결혼시즌에 특급호텔 대형 연회장 부킹은 하늘의 별 따기 만큼이나 힘들다. 장례 및 혼수품의 경우 품질은 언감생심이고 비쌀수록 좋다. 웬만한 호텔 결혼식장의 장식용 꽃값만 몇천만원을 호가한다. 행세깨나 하는 이들 명의의 화환들을 자비(自費)를 들여 식장에 전시하는 해프닝도 드물지 않게 확인된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자식이나 부모가 평생 동안 단 한번 경험하는 통과의례인데 좀 과용하면 어떠한가. 그리곤 무차별적으로 손님들을 불러댄다. 친소(親疎)를 불문하고 약간 안면만 있어도 고지(告知)하는 일들이 비일비재하다. 다다익선(多多益善)이 미덕(?)으로 치부되는 세상인 터에 의식비용도 최대한 벌충해야 하는 때문이다. 그러나 이쯤 되면 경조의례가 아니라 전시성 내지는 상업성 이벤트 행사이다. 한마디로 '폼생폼사'인 것이다.
문제는 행사에 초대받은 손님들이다. 요즘은 휴대폰 문자서비스를 이용하는 시대여서 연락을 받지 못해 참석 못했다는 변명이 통하지 않는다.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이벤트 행사장에 얼굴을 내밀 수밖에 없는데 난감한 것은 호텔결혼식에 청첩장을 받은 경우이다. 특급호텔은 고사하고 변변치 못한 호텔일지라도 한 끼 식사비가 최소 5만~6만원을 호가하는 탓에 부조금조로 10만원을 건네도 낯간지럽다. 금(金)값이 금값(?)인 상황에서 돌잔치는 더욱 부담스럽다. 수백만원짜리 부조금도 있단다. 지난 정부시절에 장관을 지낸 70대 후반의 모 인사는 여태껏 정부로부터 품위유지비조로 매월 200만원씩 받는데 이를 몽땅 경조사비에 충당해도 부족하다며 씁쓸해했다. 잘 나가는 사람들이 이런 실정인데 서민들은 '벙어리 냉가슴'이다.
최근 5년 동안에 가구당 실질소득은 제자리걸음을 거듭한 반면에 경조사비는 40%나 증가, 가계지출 중 가장 가파른 상승세를 시현하고 있다. 한 해 동안에 발생한 부조금 총액은 10조원으로 가구당 연평균 60만원에 이른다. 가계수지 악화에 한몫 거드는 것이다. 오죽했으면 국민권익위원회에서 공무원들의 경조비 상한(上限)을 제정하려 하겠나. 저출산 추세를 감안하면 환난상휼의 유래지규(由來之規)는 장려되어야 한다. 그렇다고 '폼생폼사'식 관혼상제 때문에 서민가계가 핍박받아서야 되겠는가. 일본의 사례가 돋보이는 이유이다. 외화내빈의 통과의례 바벨탑이 얼마나 더 높이 치솟을지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