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재환 (한글문화연대대표·방송인)
[경인일보=]선생님의 그 말이 잊혀지지 않는다는 말은 틀렸다. '잊히지 않는다'고 해야 한다. 그렇다면 이용의 노래 '잊혀진 계절'도 '잊힌 계절'이어야 한다. 마찬가지로 '과일이 담겨진 접시'나 '잘 닦여진 도로'는 '과일이 담긴 접시', '잘 닦인 도로'여야 한다. 잘못 사용하고 있는 피동 표현들에 대한 날카로운 지적이다. 삼삼오오 짝을 이뤄 '우리말 지킴이' 체험학습에 참여한 중학생들이 거둔 값진 성과이다.

학생들은 우리가 우리말을 올바르게 사용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갖고 체험 학습에 임한 것 같다. 올바른 우리말 사용에 대한 학생들의 생각은 다양하다. 우리말 지킴이와 우리말 훼방꾼을 찾아 나선 어느 날, 비빔밥 가게에 걸린 'bibigo'라는 표기가 눈에 거슬렸나 보다. 역시 비빔밥은 '비벼' 먹어야 제격이라는 지적과 함께 훼방꾼 3위를 기록했고, '세프라자웨딩홀'이 2위, 1위는 한글이 한 자도 적혀있지 않은 'THE COFEE BAN'이었다.

광화문 근처에서 체험 학습을 마친 학생들은 영어 간판이 생각보다 많은 것에 놀랐다며 탄식했다. 그리고 마치 그 영어 간판들이 세종대왕을 무시하는 것 같은 느낌마저 들었다고 했다. 우리나라지만 영어를 모르면 살기 어렵겠다는 푸념도 있었고, 영어 간판을 단 가게들을 '배신자'로 규탄하기도 했다. 하지만 자신들도 크게 다르지 않다는 성찰과 반성도 있었다. 난 외래어를 항상 사용했고 외래어가 쓰인 간판을 봐도 아무렇지 않다. 하지만 막상 돌아보니 심각한 상태다. 난 앞으로 외래어 사용을 자제하겠다는 말에서는 비장한 결기마저 느껴진다.

이구동성으로 영어 남용을 지적한 학생들은 '세종온누리약국', '어른을 공경하는 종로구', '국수생각', '꼬르륵 꼬르륵' 같은 우리말을 더 많이 애용해야 한다는 강한 주장을 펼치기도 했다. 그리고 '忠武公李舜臣將軍像'이라는 한자 표기의 어려움을 지적하기도 했다. '충무공이순신장군상'이라면 초등학교 동생들도 금방 이순신 장군을 알아볼 거라는 의견이었다.

어떤 학생은 학습의 딱딱함을 풀기 위해 우스갯소리를 게시하기도 했다. 가요 방송을 시청하던 아버지와 아들의 대화다. "아빠, 화면 위쪽의 LIVE가 무슨 뜻이야?" "지금 노래 부르는 가수가 살아있다는 뜻이지." 문득 옛날 얘기 한토막이 떠오른다. 서울역에 도착한 어느 시골 청년이 'SEOUL STATION'이라고 적힌 간판을 보고 감개무량한 듯 이렇게 말했다. "음, 드디어 서울 스타티온에 도착했군!" '타임지'가 아닌 '티메지'를 들고 다니던 시절의 얘기다.

영어 남용의 문제가 아닌 영어 자체를 잘못 사용하고 있는 점을 지적한 학생도 있었다. 지붕이 없는 자동차를 흔히 오픈카라고 합니다만 정확한 표현은 '컨버터블 카'입니다. 자동차를 수리하거나 점검해주는 가게를 카센터라고 하는데 올바른 표현은 '보디 숍(body shop)'입니다. "어라, 보디 숍은 화장품 가게 아냐?" 하실지 모르지만 이런 식의 콩글리시가 많다.

스폰서는 있지만 '스폰'은 없다. 없는데도 '스폰'을 한다거나 잡았다고 한다. '리어카'나 '백미러'도 그렇다. 안정효의 '가짜영어사전'에 따르면 '백' 자 들어가는 외래어가 대개 그런데 요즘 축구가 한창이니 '백 패스'와 '백 헤딩'만 예를 들어보자. '백 패스'는 공을 뒤로 돌리는 것이 아니고 '가방을 건네주는 것'이다. 축구장에서 웬 가방을? '백 헤딩'이라고 하면 머리로 상대방의 등을 들이받았다는 뜻이 된다. 하긴 요즘 축구를 보면 공보다 등이나 뒤통수를 들이받는 경우가 더 많은 것 같기도 하다.

체험 학습을 통해 드러난 학생들의 의견은 외국말글 숭배하지 말고 우리말을 잘 챙기고, 꼬부랑글자 남용 말고 한글을 많이 사용하고, 어려운 말보다는 누구나 알 수 있는 쉬운 말을 사용하고, 우리말을 정확하게 사용하자는 것이다. 얘기는 다 나왔다. 남은 건 실천이다.(중학생들의 체험학습 자료는 한글문화연대 누리집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