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인일보=정효웅 MBC ESPN 해설위원]태극전사들이 해냈다. 사상 처음으로 원정에서 열린 월드컵에서 16강 고지에 오르는 데 성공한 것이다. 2002년 한·일월드컵 4강 신화의 자랑스런 역사를 보유한 한국 축구지만 당시 대회는 '안방'에서 열렸다는 한계가 존재했다. 브라질, 독일, 이탈리아 등 세계적인 축구 강호들은 개최지를 불문하고 거의 모든 대회에서 토너먼트에 진출하고 우승에 도전하는 모습과 비교한다면, 아직 아시아를 뛰어넘는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추지 못했다고 보는 것이 객관적인 평가일 것이다.

한국은 7회 연속 월드컵 본선진출이란 위업을 달성했지만 이 가운데 5번의 대회에서 조별리그를 넘지 못하는 성적을 남겨 '아시아의 맹주'에서 더 높은 위치로 가지 못했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한국은 2002년 4강의 성적에 이어 8년 만에 다시 토너먼트에 오르며 축구 선진국에 이르는 두 번째 관문을 연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탈아시아의 두 번째 발걸음, 요약하자면 바로 이것이 원정 첫 16강의 가장 큰 의미인 것이다.

16강에 오르긴 했어도 천신만고라는 표현이 어색하지 않은 험난한 시간이었다. 배수진을 친 나이지리아를 상대로 그리스전과 같은 시원한 쾌승은 역시 어려운 일이었고 위험한 고비를 수차례 넘기며 끝까지 가슴을 졸이게 만든 경기였다. 0-1로 뒤지던 전반 골포스트를 강타한 칼루 우체의 슈팅이 그대로 빨려들어갔다면 필자는 지금과 정반대의 내용으로 글을 작성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이지리아전에서 위기를 극복하고 소기의 성과를 달성한 일련의 과정은 한국 축구에 소중한 경험과 자산이 될 것이며 박지성과 박주영, 이청용 등 유럽파를 앞세운 공격력만큼은 세계 무대에서 통할 수 있음을 확인한 것도 큰 소득이다. 조별리그 전체로 볼때 3경기에서 5골을 성공한 것과 포워드, 미드필더, 수비수까지 득점자의 고른 분포도 이상적이다. 그러나 집중력 결여로 내주지 않을 만한 골을 2개나 허용한 수비의 허술함은 나이지리아전에서 반드시 지적할 부분이다. '이제 갈 데까지 가기 위해' 길을 나설 태극전사들에게 필요한 것은 수비 안정화, 그리고 충분한 체력 보강이다. 나이지리아전 후반에 분명히 체력 열세는 드러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