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이환 (이영미술관장)
[경인일보=]지난 5월 우리나라 현역화가로 최고령인 전혁림 화백이 96세를 일기로 72년의 작가생활을 접고 작고하였다. 전 화백은 태어나서 돌아가시기까지 평생을 통영을 지키셨지만 10여 년 전부터 그림나들이로 경인지역과 특별한 인연을 맺어왔다. 인천지방검찰청과 수원지방법원 안산지원 현관에 전 화백의 큰 그림이 걸렸다. 그뿐이던가. 용인 소재 이영미술관에서는 2001년 들어서서 '88세 미수전' '목기와 그림의 만남전', 국립덕수궁미술관의 '올해의 작가전'과 같은 전시기간에 열린 '색채의 마술사 전혁림 특별전'은 경향(京鄕)의 많은 미술인의 관심을 높이고도 남아서 경기미술의 위상을 드높였다고 할 수 있겠다. 특히 2005년 11월의 '90, 아직은 젊다' 신작전은 당시 노무현 전 대통령이 참관하고, 대작 '통영항'이 청와대 인왕홀에 걸리게 되어 미술사상 한 획을 긋게 되었으니 인연이 예사롭지 않다고 할 것이다. 전 화백의 부음을 경인일보에서 크게 다룬 연유도 그래서 아니겠는가.

장례는 통영문화인장으로 유서깊은 강구안 부두 통영문화마당에서 치러졌다. 영결식장에 마련된 조문록에는 '푸르고 아름다운 한려수도를 원고지에 옮기면 유치환의 시가 되고 오선지에 옮기면 윤이상의 음악이 되고 화폭에 담으면 전혁림의 그림이 된다고 하였습니다'. '통영의 얼굴, 한국의 얼굴, 세계의 얼굴 고이 잠드소서' 등등이 빼곡히 채우고도 남았다.

'저승길 가는 길이 그리도 급하시던가. 100세 채우시길 만인이 빌고 또 빌었건만' 남해안별신굿쟁이 정영만의 진혼굿으로 식이 시작되었다. 장례를 주관한 정해룡 예총회장은 '오월의 신록도 그 찬란한 빛을 잃었고 통영바다 위를 나는 갈매기도 울음을 삼키고 있으며… 저승에 가시면 60여년 전 문화사랑에 뜻을 모았던 벗들, 유치환 김춘수 윤이상 이영도 김상옥도 그리고 박경리도 만나겠지요. 특히 이중섭과도 만나서 못다한 예술을 이야기 하십시오…' 라고 조사를 하였고, 김형오 전 국회의장은 지난해 국토순례길에서 맺었던 인연으로 '한국 화단의 살아 있는 전설이고 신화였던 선생님!… 남기신 아름다운 그림들은 시공을 초월하여 뭇사람의 사랑을 받을 것입니다…'라는 추도사를 보내왔고, 임기만료일과 겹쳐서 인연을 맺은 단초를 제공했던 필자가 대독을 하였다.

필자는 대독을 끝내고 생전 모습의 영정 앞에서 물러서자니 20년 동안이나 전 화백을 부형처럼 모시면서 하루를 멀다하고 매주 서울~통영 천리길을 다섯해 동안이나 오르내리던 근래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서 영 이별의 감회를 영전에 고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선생님! 그곳에 가셔서도 생전처럼 그림을 그리시겠습니까. 밤낮도 모자라서 꿈속에서도 그리신다던 그 열정 이제는 다 내려놓으시고 편히 쉬십시오. 6년전 박생광 탄생 100주년 기념전에 오셔서 '나도' 라고 말씀하셨는데 그때 미흡했던 점 거울삼아 전혁림 탄생 100주년기념전을 더욱 알차게 열겠습니다…'라고 고하였다. 한 시간 남짓, 정해진 순서에 따라 헌화 분향 등으로 영결식이 끝나고 운구가 시작되어 중앙로 보도에 새겨진 화백의 그림들을 옆으로 하고 통영대교 남쪽면에 걸려있는 대형 타일 벽화를 쳐다보면서 전혁림미술관에서 노제를 지낸 후 오랫동안 작품의 산실로 써왔던 화실이 있는 산양섬 풍화리 장지에 도착하였다. 푸른 바다가 고요히 흘러드는 양화마을 양지 바른 곳에 통영오광대 보존회장의 트럼펫 진혼곡이 울려퍼지는 가운데 하관되었다. 태어나서도 통영, 그리고 싶었던 그림도 통영, 만년유택도 통영, 그래서 태어난 고장의 만인이 떠받드는 아름다운 생을 마친 전 화백의 마지막은 아름다운 영면(永眠)이라고 말해도 부족함이 없지 않겠는가.

이제 전 화백 가신지 달포가 지났다. 앞으로 작품세계에 대한 평가는 전문가의 몫으로 돌리기로 하고 평소 전 화백의 그림을 좋아 했던 분들, 이런저런 인연으로 교분을 나누었던 분들과 함께 다시 한번 전 화백을 추모하고, 그리고 앞으로 5년 후의 탄생 100주년기념전을 통영 전혁림미술관에서, 경기도 이영미술관에서 알차게 치를 것을 다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