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진현 (인천민예총 정책위원장)
[경인일보=]경상 북부지역에 널리 전해지는 설화에 어리고 지혜로운 원님 고창영에 대한 시리즈가 있다. 시중에는 '지혜로운 꼬마원님'이란 어린이용 동화로 각색되어 출판된 판이 여럿 있다. 이야기인즉 고창영은 열 세 살의 어린 나이로 고을 원이 되어 부임한다. 그러나 원님이 어리다고 깔보고 놀리는 고을 아전들 때문에 여러 차례 곤란을 겪는다. 이에 고창영은 어느날 수수밭을 지나가다 짐짓 어리석은 체하고 아전들에게 묻는다. "저기 저 나무는 몇 년이나 자랐기에 저리도 키가 큰가?" 아전들은 비웃으며 그것은 나무가 아니라 한해살이 곡식 수수라고 알려준다. 원님은 수숫대를 꺾어오게 하여 아전들에게 소매 속에 넣어보라고 명령했고 아전들이 쩔쩔매며 용서를 빌자, "한 해 자란 수숫대도 소매 속에 넣지 못하면서 열 세 해나 자란 나를 얕보고 놀리려 드느냐!"고 호령한다.

어른보다 지혜로운 어린이는 근대에 들어와 '어린이'를 단순히 어른의 축소판으로 이해하던 전근대적 인식을 넘어 어린이 시기가 지닌 사회적 중요성과 이 시기의 교육 등이 특별히 강조되면서 만들어진 성격이다. 그러나 여기에서 주요갈등을 구성하는 어른과 어린이를 강자와 약자로 놓고 보면 강자보다 지혜로운 약자의 이야기는 임금보다 지혜로운 광대, 현자보다 더 현명한 바보의 이야기로 변주되며 늘 권력을 해석하는 민중적 시선 안에서 살아 움직여왔다.

전통적으로 지방의 아전들은 중앙에서 임명된 고을 원들이 바뀌어도 그대로 직책을 유지했다고 한다. 중앙에서 파견한 관리는 각 고을의 시속에 밝은 아전들의 도움을 받아야만 했으니 이들은 지방행정의 중요한 파트너였던 것이다. 그러나 어느 곳에나 세력 간의 알력은 있기 마련이니 지방의 하급 관리와 중앙에서 파견된 고위 관리의 갈등이 정도를 넘어서는 일도 적지 않았고 지방실정에 어두운 중앙관리를 놀리고 얕보는 경우도 없지 않았으며 심지어 고을 원의 눈을 피해 한술 더 떠 백성들의 재산을 우려내는 일조차 없지 않았으니 이상의 설화는 바로 그 흔적이다. 물론 중요한 것은 서로 협력하며 목민의 본분을 다해야 하는 지방관리들이 범처럼 싸우는 동안 백성들의 삶은 더 피폐해져 갔다는 것일 터이다.

요즘으로 환치해서 생각해보면 새로 당선된 지자체장과 공무원들의 관계쯤 되겠다. 시를 위해서 최선을 다하겠다는 지자체장의 다짐이 가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국민을 위해 봉사한다는 맹세를 하고 공무원이 된 이들의 본심도 역시 진짜이다. 그런데 그 결과는 국민을 위한 것으로 나타나지 않기도 하니 하나 더하기 하나가 늘 둘은 아닌가보다. 일반 시민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지자체장이니 공무원이니 하는 존재들이 가까운 것은 아니다. 그러나 또 달리 생각하면 그들도 매일 아침 일어나 밥을 먹고 차를 타고 출근하는 인천시민의 일원일 뿐이다. 그들의 이해가 일반 시민의 이해와 다를 리 없는데도 어쩐지 공유되지 않는 듯한 느낌이 드는 것은 권력을 집행하는 이들이 그 권력이 시민에게서 양도되었다는 사실을 망각하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그리고 그 망각의 근저에는 아이러니하게도 '시민을 위하여'라는 봉사담론이 자리하고 있다. 우리는 물론 서로를 위하여 존재한다. 그렇지만 살림하는 주부를 보자. 가족을 위하여 밥하고 빨래하고 청소하고 궂은 일을 마다하지 않는다. 그러나 가족이 아니어도 밥하고 빨래하고 청소해야 한다. 노동하는 가장이라고 해도 마찬가지다. 먹여살릴 가족이 없어도 일은 해야하고 돈은 벌어야 한다. 결국 우리는 우리의 본분을 사는 것이고 여기에 더 나은 삶을 위한 '위하여'가 보태지는 것이다. '위하여'를 핑계로 서로를 해칠 바엔 차라리 위하지 말고 각기 본분만을 다하는 것이 나을 것이다.

이제 곧 민선 5기가 시작된다. 빚만 인수했다는 인천시정부 인수위의 평가가 들리는 형편이고 보면 희망찬 축복의 말보다는 우려의 마음이 앞서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빚잔치한다고 시살림을 떠엎을 수도 없으니 벌여놓은 엄청난 공사판들을 어쨌든 안전하게 마무리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대단히 어려운 일이겠지만 삶은 계속되어야 하고 주어진 일은 해결해야만 한다. 그리고 그것은 먼 데 있는 낯모르는 남의 일이 아니라 바로 우리 자신, 새 시정부와 인천시 공무원과 인천시민 모두의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