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준구 (논설위원)
[경인일보=]지구촌을 달구고 있는 월드컵의 열기가 아직도 가시질 않고 있다. 11개의 형형색색으로 빚어진 월드컵 공인구 '자블라니' 한 개로 인해 지구촌은 하나가 되고, 또 우리 한반도 역시 자연스레 끈적끈적한 동족애로 뭉치게 했다.

눈을 지그시 감고 있노라면 꿈 속에서도 나타나는 게 있다. 함박 웃음의 기쁨이 충만한, 온 천지사방에 물결치던 붉은 티셔츠의 무리들이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길거리로 뛰쳐나와 태극기를 흔들며 외치는 함성이 지금도 들리는 듯하다.

특히 수원시민과 경기도민들에게는 박지성이 있어 더욱 행복했다. 2002 월드컵 4강과 이번 남아공 월드컵 16강의 주역인 그의 현란한 플레이는 수원시민은 물론 대한민국 모든 국민에게 용기와 긍지를 심어주었기 때문이다. 지난 2일 자신의 고향인 수원을 찾아 김문수 경기지사와 염태영 수원시장을 차례로 예방하고 감사의 인사를 전한 뒤 오후에는 평소 그를 아껴주던 지인들을 자택으로 초청해 만찬을 베풀기도 했다. 어린이들에게는 꿈과 희망, 기성세대들에게는 성취감과 용기의 표상이 되었기에 그를 바라보는 시각은 대견스러움 그 자체이다.

길거리 응원축제의 동기를 만들어준 것은 박지성 말고도 허정무 감독을 비롯한 23명의 태극전사들이다. 온 국민을 하나로 묶어준 이들에게는 축구를 뛰어넘은 그 이상의 감동이 있었다. '대~한민국'을 외치며 한국인임을 자랑스럽게 느낀 국민들은 정당도 지역도 계층도 출신학교도 따지지 않고 '하나'가 되게 하는 마력의 힘을 갖춘 것이다. 그 이면에는 공동의 목표를 위해서는 똘똘 뭉치는 우리 민족 특유의 신명나는 놀이문화가 자리한다.

그리스와의 경기에서 대학생들과 함께 경기를 지켜보았다. 이정수에 이어 후반 박지성의 두 번째 골이 터졌다. 순간 옆에 있던 여대생이 말없이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었다. 이 눈물의 의미는 '대한민국 국민으로 태어난 것이 너무 자랑스러워요. 지구상의 그 어떤 나라도 부럽지 않아요'. 이런 환희가 아니었을까? 공인구 '자블리니'가 상대편의 골문을 흔들었을 때 쏟아내는 국민적 에너지는 그 어떤 것으로도 분출해낼 수 없는 힘이었던 것이다.

'한국'으로, 그냥 '코리아'로 불리던 국호가 '대~한민국'으로 바로잡힌 것도 월드컵 길거리 응원에 나선 우리의 붉은 물결의 힘이 컸다. 신분의 벽이나 종교간, 지역간, 노사간, 빈부간 차이도 없다. 나아가 남과 북의 이념의 차이도, 너와 나의 구분도 없었다. 이 월드컵 축제의 신비스런 힘은 우리 국민들을 신명나게 하는 신바람의 원동력이 됐다. 이같이 길거리에서 분출된 국민적 에너지를 한데 모으고 확산시켜 국민화합의 길을 모색하는 방법은 과연 없을까? 그 해답을 찾는 일은 과연 어려운 것일까?

정치보다는 월드컵이 더 좋고, 정치인들보다는 축구스타가 더 좋다는 것에 그 누가 반성을 해야 하는 건지 안타깝다. 오죽하면 4년에 한 번 치르는 선거보다 월드컵에 더 열광하고, 심지어 월드컵이 매년 열렸으면 좋겠다는 사람들도 있다. 언제나 벼랑 끝에 서서 퇴출을 기다려야 하는 모습의 정치를 보면서 씁쓸함을 느끼는 것은 나만의 생각은 아닌 듯싶다. 국민에게 화합과 상생의 기쁨을 안겨주는 정치, 미래를 향한 활력을 불어넣는 정치가 이뤄지고 길거리를 뒤덮는 국민적 에너지가 분출되는 날은 과연 없을까?

이제 며칠 뒤면 월드컵은 4강전과 결승전을 끝으로 4년 후 브라질 대회를 기약하게 된다. 태극전사들을 향했던 온 천지의 '붉은 물결'을 다시 보고 싶다.

자발적인 국민적 에너지를 여기서 소멸시키기에는 아쉬움이 남는다. 차세대를 움직일 '월드컵 세대(W세대)'는 물론이거니와 남녀노소, 배운 자와 못 배운 자, 가진 자와 없는 자, 모두가 어우러졌던 '붉은 물결'의 힘을 다시 한데 모았으면 좋겠다.

소통과 화합을 통해 우리 사회의 악순환의 고리를 끊자. 그리하여 희망의 열매를 거두고 국운융성의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계기가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