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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천 년에 달하는 수학의 역사 전체를 돌아보면 수없이 많은 천재수학자들이 있었지만, 그 중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모두에게 명성을 얻은 위대한 천재 수학자를 한명 꼽자면 가우스를 들 수 있을 것이다. 가우스는 지난번 칼럼에서도 소개했듯이 비유클리드 기하학을 연구하는 등 기하학 방면에서도 활약하였고, 정수론, 통계학, 해석학 등의 수학의 모든 분야에 연구를 했을 뿐 아니라, 정전기학과 같은 과학적인 연구도 활발히 했던 그야말로 당대의 첫 손꼽히던 천재 수학자이자 과학자였다. 그의 별명인 ‘수학의 왕’ 만 보더라도 그가 수학에 있어 어떠한 영향력을 끼친 수학자인지 알 수 있다.
가우스는 보통 다른 뛰어난 수학자들이 수학적인 교육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던 부유한 가정에서 출생하는데 반해 벽돌공의 자녀로 가난한 가정에서 자랐다. 또한 그의 아버지는 아들인 가우스가 자신의 가업을 잇기를 원했기 때문에 수학 교육에 대해 아무런 지원도 하지 않았지만, 후에 가우스는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의 지원으로 수학공부를 할 수 있었다. 가우스는 매우 어릴 때부터 그의 뛰어난 천재성을 드러냈는데, 우리에게 가장 잘 알려진 일화는 그가 10살 무렵에 학교에서 선생님이 내준 1부터 100까지의 합을 구하라는 문제를 또래 아이들과는 다르게 등차수열의 합을 구하는 방법과 같이 계산한 것이다.
가우스는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의 도움으로 젊은 시절 괴팅겐 대학에서 공부하게 되었는데, 이 시기에 몇 가지 중요한 이론들을 연구하였고, 변의 개수가 페르마 소수인 정다각형은 컴퍼스와 자만으로 작도가 가능하다는 것을 보이기도 하였다. 또한 이 발견은 언어학을 연구하려던 가우스를 수학을 연구하도록 돌려놓은 계기가 되는 수학사 적으로도 큰 의미가 있는발견이었다.
정확히 1796년 3월 30일이라고 기록으로 까지 남아있는 이 날은, 가우스가 정 17각형의 작도법을 발견하였던 날인데, 가우스는 이 날의 기쁨을 죽을 때 까지 간직하고 묘비에 정 17각형을 새겨달라고 요청하기도 하였으나 실제로는 정 17각형이 아닌 정 17각형의 꼭짓점들을 이은 별을 조각되었다. 또한 그는 이 1796년 한 해 동안, 2차 상호관계의 법칙을 증명하는 등 합동식과 관련된 정수론에 있어 큰 의미를 가지는 수많은 연구를 했다. 그의 나이가 23살이던 1799년, 그는 마침내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그는 또한 그의 나이 25살이던 1801년에 소행성의 궤도를 예측하였는데, 이는 당시의 궤도예측방법을 합리적으로 바꿨고, 실제로 0.5도 이내의 오차로 그 궤도를 정확하게 찾아내었다. 이 궤도 예측이 놀라운 것은, 가우스가 알고 있던 데이터는 전체 소행성 궤도의 단 1%만으로 궤도를 찾아내었기 때문이고, 이 또한 로그 표를 사용한 것이 아닌 암산으로 계산해 낸 것이라는 점 때문이다. 가우스는 이러한 계산능력을 사용하여 태양광을 반사시켜 위치를 측정하는 회광기라는 도구를 발명하기도 하였다.
가우스는 30대 초반에 지난 칼럼에서도 기술한 비유클리드 기하학을 연구하기도 하였는데, 이는 출판 되지는 않았으나 오늘날에는 가우스가 가장 먼저 연구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이 비유클리드 기하학은 결과적으로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등 많은 연구의 초석이 되었다. 가우스는 말년에 자신이 성장한 괴팅겐 대학에 물리학 교수로 취임하게 된다. 그 때 부터는 물리학의 연구에 힘을 쏟으며 수많은 발견을 하였고, 취임 2년후 전자기식 전신기를 만들기도 하였다.
가우스는 엄청난 완벽주의자였고 연구를 즐기는 타고난 학자였기 때문에, 그의 연구들 중 반박의 여지가 있거나 스스로가 만족하지 못하는 연구는 발표를 하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비유클리드 기하학도 출판하지 않았다. 훗날 수학사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가우스가 남긴 일기를 읽어보고, 그 당시 수학자들이 발표한 내용들은 십 여 년 전에 가우스가 이미 다 연구해 두고 발표하지 않았었던 연구들이라는 것을 발견하기도 하였다. 그래서 한 학자는 가우스가 일기에 쓴 것들을 모두 발표 했었다면 인류의 발전이 50년은 앞당겨 졌을 것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가우스는 엄청난 업적을 남긴 학자였고, 대단한 완벽주의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