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들어 막걸리시장이 급격하게 커진 탓이다. 대표주자인 서울탁주와 국순당만의 지난해 매출액이 4천200억원인데 이런 추세대로라면 머지않아 1조원을 넘어설 전망이다. 일본을 비롯한 해외 수출도 꾸준히 느는 추세다. 돈이 된다 싶으면 지옥도 마다하지 않는 대기업들이 그냥 지나칠리 만무하다. 그러나 아직까지 대기업들의 반응은 점잖다. 진로는 영세업체들을 위해 국내시장 진출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수출용 고급 막걸리 생산에 주력하겠다고 언급했다. CJ측도 중소기업이 생산을 전담하고 자신들은 유통만 책임지는 식의 상생모델을 강조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이 말을 곧이들을 이들이 몇이나 될까. CJ가 국내 막걸리시장에 일단 발을 들여놓은 이상 미구에 다른 대기업들의 경쟁적 참여가 확실시된다. 막걸리대전(大戰)만 남은 셈이다.
순기능이 없는 것은 아니다. 대기업들이 해외시장 개척에 나설 경우 수출 증대는 당연하고 양질의 고용확대까지 가능하다. '코리아' 브랜드 제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또한 '장수막걸리'나 '생막걸리'처럼 소비자들은 보다 손쉽게 다양한 명품 막걸리들을 접할 수 있어 일거양득이다. 그러나 문제는 전국의 800여 양조업체들의 도산 우려다. 최근 들어 막걸리가 애주가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고는 하나 매출이 늘어난 양조장은 극소수에 불과하고 대부분은 오히려 경기침체로 고전하고 있는 실정이다. 대기업들이 그동안 쌓은 마케팅 기술과 자본력으로 파상공세에 나설 경우 영세 양조장들의 폐업은 시간문제다.
대기업들의 중소기업영역 침범사례가 도를 넘어선 듯하다. 기업형 슈퍼마켓(SSM)이 동네 골목을 장악한지 오래고 내비게이션·스팀진공청소기·MP3 등 중소기업들이 힘들게 키워놓은 시장에 무혈입성했다. 대형프랜차이즈빵집들의 등쌀에 영세 제과점들은 '삼강주막' 신세로 전락한지 오래며 심지어 단순가공제품인 두부시장과 콩나물시장까지 대기업이 점령했다. 오죽했으면 소상공인들이 대기업들의 등쌀에 못살겠다고 아우성을 치겠는가. 갈수록 사업조정신청건수가 늘 수밖에 없는 구조다. 2006~2008년간 누적조정신청건수가 12건에 불과하던 것이 작년 7월부터 금년 5월까지 10개월만에 무려 200건이 접수되었다. 유통관련이 대부분이나 철근가공·레미콘 등 제조업으로 점차 확산되고 있다.
고용없는 성장에다 조기퇴직 등으로 자영업자수는 2004년 357만명에서 2008년에는 421만명으로 4년만에 근 20% 가까이 늘어났으나 대부분은 창업 2년이내에 도산하는 실정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2008년 금융위기이래 내수가 부진하면서 개점휴업하는 이들이 눈에 띄게 늘고 있다는 점이다. 경기비탄력적인 한의원마저 문을 닫는 곳이 속출하고 있다. 폐업한 의원수가 2004년 598개에서 2008년에는 843개로 급증했는데 잠재고객층이 지속적으로 줄어든 탓이다. 지난해 한국개발연구원(KDI)이 2인이상 도시가구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중산층 비율이 외환위기 직후였던 1998년 66.8%에서 2008년에는 63.3%까지 하락했다. 빈곤층 가구는 작년 한해 동안에 13만가구 이상이 늘어 총 305만8천 가구에 달한다. 전체가구의 18.1% 수준으로 OECD 평균을 한참 넘어섰다. 자영업의 경영환경이 극히 척박해진 터에 미소금융이 무슨 소용인가. 밑 빠진 독에 물 붓느라 정부 재정이 점차 나빠지는 것도 걱정이다. 6·2지방선거 결과도 이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전국 800여 영세양조장들의 처지가 딱해 보인다. 어렵게 중견기업으로 성장한 몇몇 탁주메이커들의 운명조차 가늠되지 않는 지경이다. 먹이사슬이 끊어지면 생태계 전체의 안위도 담보되지 않듯 절대다수인 서민계층이 무너지면 종국에는 대기업들도 살아남지 못하는 법이다. 최소한의 상도(商道)만이라도 지켜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