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시절이었기에 '광화문'이란 한글은 정말 신선한 충격이었다. 돌이켜 보면 남대문에 걸린 '崇禮門'이라는 현판을 보고 고개를 갸우뚱했던 일, '興仁之門'을 보고 '동대문'을 왜 넉 자로 썼을까 궁금해 했던 일 등이 모두 한자에서 비롯한 사건들이었다. 한글이 없던 시절에 만들어진 것이니 한자 현판을 달고 있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도처에 널려있는 한자 표기는 우리가 아주 오랫동안 중국에 의존해야만 했던 글자 더부살이의 역사를 말해준다.
광화문의 현판이 '光化門'이었던 것 역시 우리에게 한글이 없었던 궁박한 시절의 표상이었다. 그러나 세종은 세상에서 가장 우수한 소리글자 한글을 창제했다. 세종 덕분에 우리는 비로소 우리의 문자를 갖게 되었다. 어린 백성도 하고픈 말을 할 수 있게 되었으며 문화 민족으로서 자부심과 긍지를 가질 수 있게 되었다. 15세기가 되어서야 이룬 문자 독립이고 자립이었다. 그러나 그 후로도 광화문은 '光化門'이었다.
광화문에 한글 현판이 걸린 것은 1968년이었다. 한자 현판을 떼고 한글 현판을 단다는 것은 매우 파격적인 발상이었지만, 한글을 중시한 위정자는 대한민국의 중심에 한글 시대의 개막을 알리는 이정표를 세웠다. 한글을 소통의 바탕으로 삼은 대한민국 호의 출항이었다. 한글 '광화문'이 대한민국의 중심에 서자 나어린 꼬맹이들도 자신 있게 '광화문'을 읽을 수 있게 되었고, 한글 상용으로 세대간 계층간 지역간 소통도 한층 원활해졌다.
그런데 몇 년 전 광화문 복원 이야기가 나오고, 현판 글씨가 박정희 친필이라는 사실에 대한 논란이 일더니 새 현판에 한자를 쓰기로 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19세기 말 경복궁을 중건할 당시 걸었던 무관 임태영의 글씨를, 광화문이 찍힌 옛날 사진이 흐릿해서 도쿄대가 소장하고 있는 1900년대 유리 원판을 바탕으로 어렵사리 복원했다고 한다. 일본까지 갔다 왔다니 '수고했소'라는 인사를 해야 마땅하겠지만 왠지 괜한 수고를 했다는 생각이 든다.
문화재 복원의 원칙은 원형 그대로일 것이다. 옛 것 그대로, 조상의 숨결이 밴 그대로 복원하는 것이 기본일 것이다. 본모습 그대로일 때 의미와 가치가 있을 것이다. 수원화성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것도 정조때 사용한 설계도인 '화성성역의궤'를 바탕으로 원형 그대로 복원한 것이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이것이 문화재 복원의 원칙일 것이다. 하지만 광화문 현판만큼은 다르다.
한글은 우리 고유의 문자이고 가장 자랑스러운 문화유산이다. 한글은 대한민국의 상징이다. 한자나 영어 알파벳 같은 외국 글자도 활용하지만 한글이 그 모든 수단에 우선한다. 당연히 새롭게 복원한 광화문의 현판은 '光化門'도 'Gwanghwamun'도 아닌 '광화문'이어야 한다. 원형 그대로는 아니지만 이는 미래 지향적인 새로운 역사를 창조하는 일이다. 박정희 친필이 문제였다면 다른 글씨체를 쓰면 된다.
오늘도 많은 사람들이 광화문을 찾는다. 대한민국 국민뿐만 아니라 세계 각지에서 온 외국인들도 광화문을 찾는다. '광화문'을 바라보며 한글의 나라 대한민국을 느끼고 대한민국의 역사와 문화를 음미한다. 그렇기 때문에 광화문은 '광화문'이어야 한다. 대한민국은 한글의 나라이고 한글은 대한민국의 표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