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진현 (인천민예총 정책위원장)
[경인일보=]어려서 곧잘 '괴도 뤼팡'과 '셜록 홈즈'를 견주었었다. 최고의 도둑과 최고의 탐정, 누가 더 매력적인가? 물론 도덕적으로야 탐정이 좋고 경찰이 훌륭하지만 멋진 도둑, 불의에 맞서는 의적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힘없는 기층민의 꿈이고 희망이었다. 때문에 로빈후드, 임꺽정, 홍길동 등 허다한 의적들은 지금도 끝없이 대중의 상상력 안에서 변주되고 있다. 특히 어려운 시기일수록 제도를 넘어 독자적으로 정의를 실현하고자 하는 의적의 이야기는 작가들에게도 깊은 인상을 남기게 마련이었다. 일제강점기 이해조, 홍명희, 박태원, 김사량 같은 최고의 작가들을 매료시켰던 작품은 '수호전'이었다. 구한말 애국계몽기 최고의 신소설 작가였던 이해조는 '한씨보응록'과 '홍장군전'이란 소설에서 '수호전'의 에피소드를 응용하였고 조선의 3대 천재 중 하나로 이름 높았던 홍명희는 그의 불후의 명작 '임꺽정전' 첫머리에 '수호전'을 일컬어 '일백단팔마왕이 묻힌 복마전을 어림없이 파젖히는 엄청난 재주'라 평가하면서 자신에게는 그 같은 재주는 없다고 겸사했지만 곳곳에 '수호전'의 흔적을 남겼다. 박태원은 '삼국지'와 함께 '수호전'을 새로이 번역하였고 일제말 동경제국대학을 졸업하고 일본인을 능가하는 일본어쓰기로 일본 굴지의 문학상 아쿠타가와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던 김사량은 '수호전'에서 받은 깊은 인상을 언급하더니 마치 갈 곳 없는 호한들이 양산박으로 향하듯이 급기야 일본의 감시를 뚫고 탈출하여 항일 근거지 태항산으로 입산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의적으로 상상하는 정의와 희망이 성취되기는 어려웠다. 이는 동서양 구분이 없었으니 쉴러의 희곡 '군도'에서 칼(Karl)이 결국은 자기 정의조차 실현하지 못하고 이율배반에 처했던 것과 같이 '수호전'의 송강 또한 대의를 지킬 수 없는 세상을 버리고 양산박으로 피난하여 오히려 충의를 이루기 위해 황제의 진정한 초무를 기대했지만 결국 좌절하여 피붙이보다도 소중하게 생각했던 의형제들과 자결하고 만다. 호풍환우조차 자유로운 호한들의 세계에서도 제도권의 높은 벽을 넘어서기는 어려웠던 것이다.

이를 달리 살피면 단순히 도적들조차 수호코자 애쓰는 의리와 충의가 전부가 아니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수호전'을 음미하다보면 호걸들의 활약보다 더 두드러지는 것이 '자신을 알아주길 바라는 깊은 욕망'이다.

108명의 의형제 중 으뜸인 송강은 의리 굳고 어질지만 이렇다 할 재주도 없어 공손승의 신이한 법력이나 오용의 지략, 이규·무송·노지심의 용력, 신행태보 대종의 속도 등 빛나는 여타의 캐릭터와 비교하면 다소 밋밋하다. 그런데도 보는 사람마다 그 인품에 감복하지 않는 이 없고 가뭄에 '때 맞춰 내리는 비'라는 의미로 급시우(及時雨)라 높이 일컬으니 한반도를 가로지르는 것보다 더 먼 고을, 지나는 사람을 약탈하고 목숨을 빼앗는 흉악한 도적들조차 혼잣말로 하는 '송강' 소리만 들어도 곧바로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여 경의를 표한다.

도대체 이 같은 존경은 무엇일까? 크지 않은 체구에 얼굴조차 검어서 '흑송강'이란 별칭이 있으니 용모가 눈에 띄는 스타일도 아니고 신분은 '압사'라니 지방 하급관리 서리로서 평생 한동네를 떠날 필요 없는 아전이다. 재산은 넉넉하다지만 엄청난 부호가 비일비재한 소설 속의 상황을 보면 그다지 유표할 정도도 아니다. 그럼에도 온 나라에 꼭 필요한 인물로 이름 높으니 생각해보면 이야말로 모든 사람들의 꿈이 아닐까? 특별히 대단한 경력, 이력이 아니어도 이름만 듣고도 나를 알아주는 세상, 이것이야말로 '수호전'에 열광하는 보통 사람들의 꿈인 것이다. 그리고 그 같은 꿈은 또한 그다지 어려운 일로 성취되는 것도 아니다. 지나는 노파의 곤경을 넘겨버리지 못하여 은전을 쥐어주는 아전, 불의를 미워하고 정의를 실천하는 호한의 일이라면 자신의 일처럼 앞장서는 아전, 약속을 지키고 권력을 남용하지 않으며 도리와 덕으로 사람을 대하는 아전이면 백성들이 원하는 바로 족했던 것이다.

결국 평범하지만 인간을 아끼는 인간을 서로 알아보는 세상이야말로 '수호의 세계'의 핵심이다. 우리가 바라는 세상 또한 그리 멀지 않으니 송강 같이 평범하면서도 비범한 지방관리, 아니 인간을 꿈꾸어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