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상욱 (와세다대학 상학학술원 특별연구원)
[경인일보=]은행을 말하는 영어 'Bank'는 중세 유럽에서 전주(錢主)들이 공원 같은 곳에 나가 여러 명이 앉을 수 있는 기다란 벤치의자(bench)에 앉아 돈을 꿔주고 받고 하던 것에서 유래되었다. 그리고 그 당시 돈을 꿔간 사람과 돈을 빌려 주는 전주 사이에 싸움이라도 일어나면 전주가 앉아 있던 벤치가 꼭 부서지기 일쑤였다고 한다. 그래서 오늘날 은행 파산을 뜻하는 영어 단어 'bankruptcy'도 벤치가 부서지다는 데서 나왔다.

그런데 요즘은 은행이 망해 버리면 중세 때와는 달리 벤치 하나 그저 못쓰게 되는 것이 아니라 나라 경제가 흔들릴 만큼 후유증이 크다. 더욱이 금융거래가 국제화되고 국가간 금융망이 꽤나 복잡하게 얽히고설켜 어느 나라건 간판 은행에 사고가 나면 그 불길이 세계로 순식간에 번지기 십상이다. 이에 따라 지난 리먼 브라더스 사태로 세계 금융위기를 몰고 온 미국이 칼을 빼들었다. 은행들이 지나치게 돈놀이에 열중하는 것을 막아 전번과 같은 금융위기가 재발하지 않도록 새로운 금융규제법을 만들어 지난 21일 오바마 대통령이 서명, 발효시켰다.

이로써 미국 은행들은 앞으로 위험이 큰 금융거래를 할 수 없게 되었다. 또 은행이 경영위기에 빠지더라도 지금까지와 같이 공적자금 투입 등의 회생 기회를 주지 않고 금융업계가 스스로 처리해야 한다. 더는 대마불사(Too Big to Fail)는 없다. 이번 금융규제개혁법의 내용은 그동안 미 의회의 수정을 거치면서 당초 안보다 규제 강도가 많이 약해졌다. 예금은행에 대해 일부 증권거래를 인정하는 예외규정이 추가된 것이 그렇고 환율이나 금리 변동에 따른 손실을 줄이기 위해 금융파생상품거래를 부분적으로 인정하는 규정삽입 등이 그렇다. 이는 규제가 세면 금융회사의 활력을 꺾어 오히려 금융시장에 부정적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우려가 반영된 결과다.

하지만, 그동안 계속해 금융자유화와 은행의 경영자율성을 확대해 온 미국이었던지라 금융시장의 반응과 금융회사가 느끼는 체감도는 그리 만만치 않다.

미국은 지난 1929년 대공황을 계기로 은행과 증권회사의 겸업을 금지하고 은행에 위험이 집중되는 것을 막기 위해 글래스 스티걸법(Glass-Stegal Act)이란 것을 만들어 시행했었다. 그러다 1999년 금융주도의 경제성장을 꾀하기 위해 그간의 은행규제법을 전격 폐지했다. 이에 따라 은행과 증권회사간 통합이 봇물 터지듯 일어났고, 그 결과 기라성 같은 투자은행이 탄생했다. 그런데 이들 거대 은행이 큰 몸집을 지탱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먹거리가 필요했고, 그래서 찾아낸 것이 복잡하기로 말할 나위 없는 금융파생상품이었다. 잘하면 대박 아니면 쪽박이라 할 정도로 파생상품의 위험성은 매우 크다. 그럼에도 대형 은행은 앞다퉈 파생상품 거래에 매달리면서 그 탐욕이 날로 커졌고, 그 와중에 월가의 대표주자로 군림했던 리먼 브라더스가 파산해 미국 경제는 물론이고 세계 금융시장을 혼란에 빠트렸다. 이에 따라 은행에 대한 규제 강화 목소리가 터져 나왔고, 결국 오바마 행정부와 미 의회가 움직여 이번 금융규제개혁법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미국 은행으로서는 자업자득이 아닐 수 없다.

이제 남은 일은 금융규제개혁법의 세부 시행규칙과 운영지침을 만드는 것이다. 그런데 이 작업이 꽤 방대해 앞으로 법이 온전히 시행되기까지는 다소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하지만, 그 사이에라도 미국 은행의 업무영역 조정에 따른 수익성 저하와 이에 따른 미 금융시장내 질서 및 업계 경쟁구도 재편 가능성 확대는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