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종록 (변호사)
[경인일보=]"국민을 하늘처럼 받들겠다", "지역주민의 머슴이 되겠다"던 후보 때의 공약과 당선 후의 다짐들이 퇴색하고 점점 오만과 독선이 자라나는 것을 지켜보는 국민과 유권자는 분노를 삼키며 때를 기다린다. 한번 잘못된 선택을 바로잡고 뒤늦게나마 경고의 메시지를 표출하는 방법은 선거 때밖에 없기 때문이다. 아무리 그렇다고 국민들이 들고 일어나 거리로 뛰쳐나가 외칠 수는 없지 않은가. 지방선거로 민심의 향방을 읽었을 법한데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의 의례적인 반성 이외에 시간이 지날수록 별로 달라지는 게 없어 보인다. 국민의 혈세는 줄줄이 새어나가고 비리와 부정은 연일 터지고 공무원들의 기강은 무사안일과 해이한 상태 그대로다. 국회의원 재보선에서 압승하였다고 희색을 보이고 있으나, 이는 야당에 대한 경고이지 정부와 여당을 지지하는 것으로 보기에는 아직 이르다. 내가 태어나 살고 있는 이 나라 이 강산에 대한 무한한 감사와 사랑조차도 현실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실망과 좌절의 그늘에 가려버린다. 정말 더 나아질 수는 없는 것인가. 우리는 과연 한계에 와 있는가.

나는 이번 지방선거에서 투표하지 않았다. 이리저리 얼굴만 내밀고 표정관리나 하며 하는 일은 별로 없이 쓸데없는 사업만 벌이던 현직 출신의 후보도, 뻔한 비리를 정치논리와 증거재판주의의 안개 속에 모호하게 숨기면서 선동에 열을 올리는 후보도, 선거 때만 되면 철새처럼 출몰하는 여타 후보도 모두 믿을 수가 없고 찍어주고 싶은 마음이 도무지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무리 비교선택이라 하더라도 어느 후보도 마음이 내키지 않는다면 투표하지 않을 권리를 행사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이렇게 인물이 없지는 않을 텐데 대한민국의 정당들은 인기가 없어서 인재들이 외면하는 것일까, 아니면 정당들이 제대로 된 인재는 찾지 않고 이런저런 사유로 선택의 폭을 스스로 제한하고 있는 것일까. 맹렬하게 추진하던 국책사업도 선거에서 참패하자 방향선회에 들어가고, 지자체에서는 그동안 쌓인 예산낭비, 비리와 부정이 연일 터지고 있다. 그렇다고 새로 입성한 단체장들은 잘하고 있는가. 소속공무원들은 안정을 찾지 못하고 좌불안석 눈치 보기에 바쁘다. 공무원들이 이 모양을 하고 있는데 대국민 행정이 제대로 될 리 있겠는가. 납세거부운동이 일어나지 않고 무정부주의자가 발호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다 싶을 때가 있다.

그러나 아직도 늦지는 않았을 것이다. 초심으로, 후보 때의 마음으로 전부 돌아가 겸허하게 귀를 열어 국민의 소리를 듣고 마음을 비우고 국민의 분노와 바람을 읽으면 답이 나올 것이다. 이 기본에 충실하면 설령 세부적인 사항에 시행착오가 있더라도 국민은 이해하고 기다려 줄 것이다. 최근 경제관련 각종 지표들은 호전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음에도 중소기업과 서민들은 경제사정이 더 어렵다고 한다. 재벌과 대기업 소수가 경제지표 상향에 역할을 하고 있을 뿐 대다수 중소기업, 중산층 이하 서민들의 체감경기는 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 아닌가 싶다. 국가 예산의 효율적 배정, 각종 공적자금과 연기금의 적극적 활용, 능동적인 금융정책 등으로 서민경제의 숨통을 터주지 않으면 불만의 목소리는 점점 커질 것이다. 국정과 국민에 대한 시각을 정치논리로만 보려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크든 작든 어려움과 아픔을 같이 하고 진지하게 고민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국민들은 여야 정당을 가리지 않고 지지와 응원을 보낼 것이다. 위정자 및 공무원들은 경제분야가 제일 앞서가고 있고 관료사회는 경제분야는 물론 국민 평균 선에도 못 미치고 정치가 꼴찌라는 평가가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충분히 반성하고 성찰하여 거듭나지 않으면 안 되는 시점에 이르렀다고 본다. 지구상에 이 나라 국민만큼 애국심 있고 이해심 많으며 착한 백성도 그리 흔치 않다고 본다. 반면 우리 국민들은 이제 성숙할 만큼 성숙했고 깨어날 만큼 깨어나 있다. 국민을 무시하거나 민심을 외면하면 더 이상 관용은 없을 것이다. 위정자들이여, 그리고 대한민국 공무원들이여, 명심하고 명심할지어다. 민심이 천심이고,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으며,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사실을(헌법 제1조). 나아가 결코 그대들이 잘났고 똑똑하기 때문에 제멋대로 하라고 그 자리에 선임해 준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