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준구 (논설위원)
[경인일보=]'다 줄 생각을 해야 하는데 그래도 아나운서 할래?', '애인이 너무 심하게 빨아줘서 이빨이 아프냐?', '누드 사진 찍어볼래?'…. 국회의원과 학교장, 군수의 최근 발언내용들이다. 사회지도층들의 성희롱 발언 파문이 걷잡을 수 없이 커져간다. 새삼 어제 오늘의 이야기는 아니지만, 아무리 사석이라지만 지도층의 사회적 책임과 자질마저 의심케 하는 발언들이다. 대한민국은 인터넷 포털의 위력이 대단해지면서 이미 성희롱의 천국이 되다시피 했다. '얼짱' 'S라인' '꿀벅지' 등 여성의 외모를 상품화하는 단어들은 벌써부터 아이들에게까지 퍼진 지 오래다.

이 때문에 여성들의 외모지상주의를 낳아 너도 나도 성형외과로 달려가고, 이로 인한 폐해는 날로 극심해져 간다. 자신의 외모를 비관하고 또 잘못된 수술로 인해 평생을 고통받고 살아가는 여성들도 생긴다. 아무리 사회가 그렇다 하더라도 우월적 지위에 있는 국회의원과 지방자치단체장 학교장들이 이같은 고강도의 성희롱 막말을 남발하는 것은 놀랍다. 그것도 맨 정신에 했다는 것은 정신나간 것과 다름없다. 여성에 대한 성희롱은 숱하게 발생했지만 최근 일련의 사례는 가히 충격적이다. 이같은 원인은 조직 내에서의 인사권 등 막강한 권한과 수직적 관계를 악용한 상사들의 그릇된 심리와 공인의 신분을 망각한 윤리의식 결여 등에서 비롯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특히 음담패설 등 성적인 농담이 관행화되고, 솜방망이 처벌 또한 이를 부추기는데 한 몫을 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성희롱과 막말은 우월적 위치를 점하고 있는 가해자가 농담한 것에 불과하다고 주장할 수 있지만 피해를 당한 당사자의 입장에서 보면 분명 수치심과 모멸감을 느끼는 인격에 대한 침해다. 직장내 성희롱 방지교육을 실시해야 하는 위치의 인사들이 성희롱이 무엇인지도 모른다면 그건 큰 문제다. 그럼에도 사회적 약자라 할 수 있는 조직원을 대상으로 버젓이 성희롱을 일삼는다면 피해자는 수치심과 피해의식으로 인해 그 가해자와 함께 정상적으로 업무를 수행할 수 없는 경우까지 발생할 수 있다.

법에 규정된 성희롱 행위를 보면 말하는 사람이 아무리 좋은 뜻으로 말했다 하더라도 상대방이 원하지 않는 언어나 행동이 반복되는 경우에는 성희롱이 성립된다고 한다. 나아가 단 한번의 성적 언동이라도 그 내용이나 행위면에서 성적인 수치감이나 모멸감을 느낄 정도로 심한 경우에는 성희롱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 구체적인 예로 음란한 농담이나 음담패설, 외모에 대한 성적인 비유나 평가, 성적 사실 관계를 묻거나 성적인 내용의 정보를 의도적으로 유포하는 행위, 성적 관계를 강요하거나 회유하는 행위, 회식자리 등에서 무리하게 이성을 옆에 앉혀 술을 따르도록 강요하는 행위, 음란한 내용의 전화통화 등 사회 통념상 성적 굴욕감을 유발하는 것으로 인정되는 언어나 행동 등이다.

이렇듯 성희롱을 예방하기 위해선 본인의 윤리관이 기본이 돼야 하겠지만 일상생활에서 의식할 수 있도록 정기적인 교육이 수반돼야 한다. 특히 피해자는 범죄를 당하는 것과 다름없어 엄벌에 처하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 즉, 한 마디의 잘못된 말이 패가망신에 이를 수 있음을 법에서 보여줘야 한다.

성경 잠언에는 '말을 아끼는 자는 지식이 있다'라고 말한다. 속담에도 '진정한 영웅은 입을 잘 다스린다'는 말도 있다. 그만큼 말의 위력은 대단하다. 모든 큰 사건이 단순한 말에서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말이 한 번 입에서 떠나면 그 영향은 가늠하기 힘들다. 그 말의 발원지가 유명인인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경직되고 흑백논리가 판치는 우리 사회에서 말이 자신을 잡아간다. 정치인과 지도층은 매일 입에 재갈을 물리고 말조심하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 그래야 평생 일구어 놓은 자리에서 패가망신하지 않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