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깔이 다른 드라마를 표방했던 SBS 수목극 '나쁜 남자'가 저조한 시청률로 막을 내렸다.
'나쁜 남자'는 5일 마지막 회에서 AGB닐슨미디어 기준 시청률 8.4%를 기록했다. 이날 방송은 건욱(김남길)이 해신그룹 회장의 친아들로 밝혀진 뒤 건욱의 죽음을 암시하는 내용으로 끝났다.
지난 5월 26일 방송을 시작한 '나쁜 남자'는 11.7%의 시청률로 출발한 후 KBS '제빵왕 김탁구'의 기세에 밀리며 방송 후반 한 자릿대 시청률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막판에는 김남길의 갑작스런 입대로 당초 예정보다 3부가 줄어든 17부로 서둘러 막을 내려야 했다.
'나쁜 남자'는 방송 전부터 MBC '선덕여왕'에서 비담으로 인기몰이를 한 김남길의 후속작이란 점에서 관심을 모았다.
'미안하다 사랑한다'와 '눈의 여왕' 등 거친 남자 캐릭터를 매력적으로 그려내는 데 일가견이 있다는 평가를 받는 이형민 PD가 연출을 맡았고 3년 만에 브라운관으로 돌아온 한가인이 가세하면서 기대감은 더욱 커졌다.
갑작스레 편성이 바뀌면서 방송 날짜가 급하게 앞당겨지는 우여곡절도 있었지만 첫 출발은 나쁘지 않았다. 감각적인 영상과 빠른 전개는 시청자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2주 뒤 시작된 '제빵왕 김탁구'가 무세운 기세로 치고 올라오면서 흔들리기 시작했다.
게다가 전개가 탄력을 받아가던 시점에 월드컵 특집으로 2주간 결방하면서 이야기의 흐름이 끊기는 상황마저 벌어졌다.
실제 지난 6월 10일 자체 최고 시청률인 14.2%를 기록한 후 2주 결방하는 사이 '제빵왕 김탁구'가 시청률 30%를 넘어섰고 이후 '나쁜 남자'의 시청률은 회복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편성 불운과 경쟁작 탓만 할 수는 없었다. 이야기 자체의 설득력에도 문제가 있었다.
현대인의 감춰진 욕망을 드러낸다는 기획 의도처럼 캐릭터들은 자신의 욕망을 숨기지 않았고 특히 주인공 건욱은 선악을 오가는 모습을 보여주며 기존 드라마 속 주인공과 차별화를 시도했다.
그러나 나쁜 남자 건욱의 치명적인 매력에 해성그룹 장녀 태라(오연수)와 막내 모네(정소민), 그리고 신분 상승을 꿈꾸는 아트 컨설턴트 재인(한가인)까지 빠져든다는 내용은 호소력이 떨어졌다.
건욱이 여성 캐릭터와 뚜렷한 멜로 라인을 보여주지 않았다는 점도 진한 멜로를 기대한 시청자들의 아쉬움을 샀다.
해신그룹을 향한 건욱의 복수는 양자로 입양한 자신을 버린 부모를 죽음에 이르게 했다는 점에서 동기는 이해가 갔지만 그 과정은 시청자들의 공감대를 사기 어려웠다.
그룹의 여자들을 유혹해 파멸로 이끈다는 건욱의 방법은 그가 가진 분노에 비해 너무 가벼워 보였다. 막판 반전으로 건욱이 누나 태라와 여동생 모네를 동시에 유혹한 셈이 돼 버려 패륜을 소재로 했다는 비판의 여지도 있다.
그러나 여러 악재 속에서도 연기자들의 호연은 빛났다.
변화보다는 성숙을 택했다는 김남길은 캐릭터에 걸맞은 연기를 보여줬고 한가인도 속물적인 여성 재인을 무리 없이 소화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차가움 속에 열정을 간직한 태라 역의 오연수는 단연 두드러졌다.
그는 사랑을 모른 채 대그룹의 장녀로서, 아내로서, 엄마로서 살아오다 낯선 남자 건욱에게 빠져드는 여인의 모습을 섬세하게 표현했다.
김재욱과 김혜옥 등 조연들도 안정적인 연기로 뒷받침했다.
'나쁜 남자'는 매력적인 캐릭터와 색다른 전개로 기존 멜로 드라마나 복수극과 다른 색깔을 담아내는 데는 성공했지만 시청자들을 사로잡을 만한 통속성이 부족했다는 점에서 차별화된 드라마로서의 한계를 보여줬다.
'나쁜 남자'의 후속으로는 이승기, 신민아 주연의 '내 여자친구는 구미호'가 방송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