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명구 (아주대교수)
[경인일보=]유인촌 장관이라는 예외가 있기는 하지만 단언컨대 거리의 갑남을녀에게 대한민국의 장관은 별로 유명하지 않다. 장관 한 번 되기 얼마나 어려운가를 안다면 서운할 노릇이지만 젊은이들의 경우에는 누가 장관인지 관심조차 없다. 그런데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이 지난 7월 26일 하노이의 기자 간담회에서 던진 몇 마디 비외교적(?) 발언 때문에 거의 유인촌 장관만큼 유명해졌다. 핵심은 대충 이렇다. "한나라당 집권하면 전쟁난다고 6·2 지방선거 때 민주당 찍은 젊은 애들은 그럴 것이면 이북 가서 살아라. 민주화의 단물만 빨아먹는 세대 때문에 나라의 앞날이 걱정이다."

공직자 중에서도 특히 언사가 신중해야할 최고위 외교당국자의 말치고는 너무 거칠어 그의 발언에서 짙은 국내정치 냄새를 추적하는 해석이 그래서 마냥 낯설지만은 않다. 그러나 항시 젊은이들을 대하는 직업을 가진 나에게 유 장관의 해석은 사뭇 낯설다. 특히 우리네 젊은 세대의 대북관에 대한 흑백논리 인식은 다분히 교조적이다. 물론 전쟁도 모르고 풍요롭게 자란 세대들의 대북인식이 기성세대로서 특히 북한을 상대로 총성 없는 전투를 총지휘하는 당사자로서 우려스러울 수도 있음을 인정한다. 허나 46년생이니 연배로 치면 4·19 세대의 끝머리쯤에 속하는 유 장관 역시 당대 젊은이들의 대북 구호가 "가자 북으로, 오라 남으로"였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기성세대가 고생해 이룩한 풍요가 같은 유형의 후세대를 잉태하리라는 기대는 무망하다. 그들은 나름의 방식으로 주어진 상황에 적응하거나 시대에 걸맞은 새로운 유형의 도전을 추구한다. 한 마디로, 그들이 옳고 그른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기성세대와 다르다는 것은 확실하다. 그래서 기성세대는 젊은 세대를 이해하기보다는 오해하기 쉽다. 지난 월드컵 기간 중 젊은 세대가 북한의 재일교포 출신 축구선수 정대세에게 붙인 애칭 '인민 루니'는 그들의 대북관에 대한 오해를 풀고 이해를 돕는 징검다리가 될 수도 있다.

40대 이상의 평균적 한국인에게 '인민'이란 단어는 아직도 불편함을 넘어서 희미하게나마 붉은 색으로 채색된 뜨끔함으로 다가오기 일쑤다. 그런데 우리네 젊은이들은 이런 '인민' 뒤에 이름난 프리미어 리그 축구선수 '루니'를 덧대어 단칼에 정대세로부터 인공기의 붉은 색을 지워버렸다. '인민'의 이념성은 '루니'로 상징되는 상업적 스포츠주의와 기묘한 그러나 동시에 '간지나는' 형용모순을 구성하는 것이다. 그 결과 정대세는 한편으로는 루니 스타일로 축구 잘하는 '북한' 선수, 다른 한 편으로는 루니처럼 일반인의 사랑을 받는 빼어난 축구 선수 그 중간 어디쯤에 속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그 어디에도 북한 찬양이 없다. 북한은 다만 정대세를 통하여 가깝고 친근해진 것이다. 월드컵 기간 중 자막으로 번역된 서구의 국가(國歌)에 잘 드러나듯 서구의 '인민'은 자유를 향한 장엄한 투쟁사를 통해 얻어진 민주 정치철학의 체화(體化) 그 자체이다. 반면 우리는 '인민'을 세대라는 변수를 통하여 가볍게 우회 접근하고 있다.

안다. 바로 이런 가벼움과 그에 수반된 빈약한 진정성이 젊은이들의 언어구사에 내재함을. 그리고 아쉬워한다. 서양의 자유와 풍요를 부러워하면서도 서양 국가에 나타난 인민들의 영웅적 투쟁사실에 그들이 상대적으로 무심함을. 그러나 동시에 잊지 말자. 식자의 눈에 경박해 보이는 한류가 식자들의 그 어떤 언술보다도 실질적 영향을 발휘하듯 미래는 기성의 묵직한 근심보다 신세대의 경쾌한 번득임을 원할지 모른다는 사실을. 그리고 신세대들은 어쩌면 기성세대를 반면교사하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끝으로 사족 하나. 나는 유 장관의 발언이 진정 대내 정치용이기를 바란다. 만일 대외용이었다면 그의 우려와 달리 나라의 앞날을 위해 젊은이들이 유 장관을 걱정해야 할 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