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이후 65년은 한민족 역사상 유래없는 고속 경제 성장기이다. 광복 직후 1인당 국민소득이 50달러인데 비해서, 65년후인 2010년 1인당 소득은 2만달러로 400배 증가하였다. 반면에 단군께서 고조선을 개국했을 때의 1인당 국민소득을 1달러라고 가정하면, 그 시기부터 1945년까지 4300년간 1인당 국민소득은 50배 증가한데 그쳤다. 그러므로 광복 후 현재까지 기간은 한민족 역사상 최대의 호황기라고 단언할 수 있다.
한국 경제가 이처럼 고속성장을 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원인은 외국의 산업기술을 효과적으로 도입하고 내재화하였기 때문이다. 한국 국민의 높은 성취욕, 근면성, 교육열 등도 고속 성장의 원인이기는 하나, 이런 국민적 소양만으로 한국 경제의 고속성장을 전부 설명할 수 없다. 북한은 남한과 똑같은 국민적 소양을 보유한 국가였지만, 외국 기술의 도입과 대외 무역을 억제하는 정치 제도를 채택하였기 때문에 남한보다 성장의 속도가 월등히 낮았다.
기술 축적을 통한 한국경제의 성장을 가장 드라마틱하게 보여주는 산업으로 자동차 산업을 들 수 있다. 한국이 최초로 생산한 자동차 모델은 1962년 출시된 신진자동차의 새나라였는데, 이 차는 전 부품을 외국에서 수입하여 한국에서 조립한 것으로 그 성능은 외국차에 비해 매우 낮은 수준이었다. 그러나 자동차 산업은 외국 기술을 효과적으로 도입하고 도입된 기술을 개량하는 자체 연구 개발을 지속적으로 추진하여 세계적인 경쟁력을 가진 한국의 대표적 글로벌 산업으로 성장하였다. 한국 경제의 고속 성장은 한 시대를 풍미했던 종속이론을 무색하게 하였다. 한번 주변국은 영원히 중심국이 될 수 없다는 것이 종속이론의 핵심인데, 한국의 사례는 이런 가설에 확실한 반증을 제공한다. 한국은 2차대전 이후 세계에서 후진국의 굴레를 벗고 중진국을 넘어서 선진국으로 근접한 유일한 사례이다. 한국의 성공은 중국, 동남아시아 등 후발개도국이 한국형 개발 전략을 채택하도록 유도하였다.
그러나 한국의 성장잠재력과 기술 능력에 대해서 지나치게 자만해서는 안된다. 미국 MIT 대학의 유명한 경제학자인 폴 크루그만은 한국 경제의 고속 성장과 기술축적은 한국의 혁신 능력이 뛰어나기보다는 '후발자의 이익'(late-commer's advantage)을 향유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해석하였다. 그의 이런 주장은 후발자의 이익을 활용한 고속 경제 성장은 한국의 전용물이 아니라, 중국, 태국 등 후발국에서도 성공적으로 추진되고 있는 사실에 의해서 지지되고 있다.
한국은 후발자의 이익을 향유하는 단계는 졸업할 시점이며, 졸업후에는 과거와 같이 기술 혁신을 효과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가를 입증해야 한다. 기술의 무임승차는 더이상 불가능하다. 한국이 필요로 하는 기술은 세계 어디에도 없는 독창적 기술이거나, 다른 나라에 있더라도 특허 등 지식재산권의 보호를 받는 기술이기 때문이다. 기술전략이란 측면에서 한국은 모방국의 대열에서 창조국의 대열로 소속이 변경된 것이다. 모방형 전략을 계속 추구하고 싶어도 임금 등 생산비용이 높아져서 중국 등 다른 모방형 전략 국가와의 경쟁이 어렵다.
광복 후 현재까지의 대한민국의 역사는 난관과 시련도 컸지만, 경제 발전의 측면에서는 대성공의 시기이다. 그러나 과거의 성공이 미래의 성공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특히 과학기술의 관점에서 보면, 모방에서 창조로 전환해야 하는 어려운 과제를 안고 있다. 모방국에서 창조국으로의 성공적인 전환을 위해서는 개인과 기업의 창조성을 극대화할 수 있는 방향으로 교육제도, 사회제도, 경제제도, 과학기술 관련 제도 등이 혁신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