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대로 계획한 일정도 없이 하계 휴가철에 고향을 다녀오는 길에 잠시 들러 본 피서지의 풍경은 그야말로 무질서와 혼란, 나아가 무법천지라 할 만하였다. 무단 투기한 쓰레기 더미들, 음주운전은 물론 교통질서 준수외면, 고성방가, 성추행, 폭언폭행, 불량식품 판매, 바가지 상혼의 난무로 아비규환이 따로 없었다. 이 나라에 과연 규범이 있었는가. 우리는 과연 어떤 교육을 받고 어떤 의식을 가지고 자라왔기에 이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는 말인지 진실로 나 스스로가 부끄럽고 자식들 앞에 면목이 없었다. 그나마 휴가철이 지나고 다시 제자리에 돌아왔을 때는 나아지기라도 했는가. 출퇴근길 서울시내는 끼어들기, 신호위반, 차선위반, 불법 주정차로 다시 무질서의 극치를 보이고, 더욱 가관인 것은 보다 못해 창문을 열고 나무라기라도 하면 제 잘못은 간곳없고 욕설과 삿대질을 해대는 것이다. 바늘도둑이 소도둑 된다는 속담이 있다. 작은 질서를 지키지 않는 사람은 보다 더 큰 위법행위도 범할 가능성이 크다고 할 것이다. 사회 공동체에서 준법정신의 출발은 기초질서를 지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사회는 어떠한가. 우선 기초질서 준수가 엉망이다. 아무리 인간은 이기적 동물이라 하지만 남에게 피해를 끼치고 공공의 안녕과 평화를 위한 질서를 파괴하는 행위마저 용납되는 사회가 되면 그 사회는 양육강식, 적자생존의 법칙이 지배하는 정글이 되고 만다.
법을 무시하고 규범이 파괴되는 이러한 사회현상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경제적 성장을 최우선으로 추구해온 해방이후 우리의 삶의 태도에서 비롯된 뒤틀린 가치개념이 원인이 될 것이고, 성적과 학력에만 매달려 인성교육을 소홀히 해온 교육제도의 잘못, 그리고 가정교육의 미흡도 그 원인이 될 것이다. 나아가 법과 질서를 파괴하는 행위에 대한 지나친 관용과 온정주의, 특히 유죄판결이 선고되어 형 집행중인 자에 대하여까지 정치적 이유 등으로 사면복권이 남용되는 사례의 반복은 법을 경시하는 풍조의 원인이 될 수도 있다. 구태여 자신이 저지른 잘못에 상응하는 형벌을 받아야 한다는 응보형주의를 고집하지 않더라도 적어도 처벌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없어서야 이기적인 인간사회를 어떻게 규율할 수 있단 말인가.
인사청문회를 바라보며 불과 몇 해 전 위장전입이나 병역기피, 작은 탈세만으로도 임명이 취소되거나 자진 사퇴하던 때와 달리 세월이 또 흘렀고 비판의 강도도 낮아진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을 받았다. 정치공세란 지나가는 바람과 같아 어떤 원칙의 준수를 관철하는 것이 아닌 것 같아 씁쓸한 감을 지울 수 없다. 원칙이 무엇인가. 태산이 무너져도 지켜야 할 것은 끝내 지켜야 하는 것이 원칙이다. 원칙을 만들어 놓고나서 예외와 관용을 남발하면 그것은 벌써 원칙이 아닌 것이다. 우리 모두 법과 질서가 존중되고 준수되는 사회(rule of law)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다짐해야 할 시기에 이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