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꼼꼼히 살펴보면 이 개편안이 '다양성'과 '선택'의 원리를 얼마나 무시했는가를 쉽게 알 수 있다. 특히 탐구영역의 응시과목 수를 보면 사회탐구영역과 과학탐구영역에서 선택 시험과목수가 각각 한 과목으로 되어 있다. 이는 곧 입시 위주의 파행적 교육을 부채질할 것이라는 염려를 현실로 만들기에 충분할 것이다. 연구회측은 사회탐구영역에 대해 유사 과목을 통합해 한 과목만 선택해 시험에 응시토록 하는 안을 내놓았다.
이미 언론에서는 2009 개정교육 과정과 관련해서 일선 학교장에게 주어진 20%의 교육과정 자율권, 교육과정 자율학교에게 주어진 50%의 교육과정 편성의 자율권을 국·영·수에 할애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다. 학교 현장에서의 국·영·수의 집중화는 사교육을 더욱 부채질하여 정부가 지향하는 공교육의 정상화를 저해하게 된다. 뿐만 아니라 교육부가 야심차게 추진하고 있는 2009개정 교육 과정의 핵심 방향인 창의인성교육에 장애가 될 것임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연구회측은 2009 교육과정 개편의 주요 방향을 반영해 수능에서도 교과별로 통합을 시도하면서 과목간의 유사성, 교육과정 내용 분량 등을 고려했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사회과 교사라면 누구나 다음과 같은 물음을 제기할 수 있다. 사회탐구영역 일반사회 과목의 경우 무슨 유사성이 있어서 법, 정치 그리고 사회·문화를 함께 묶었을까 하고 의아해할 것이다. 적어도 학생들이 일반사회 과목에 응시하려면 사회학, 문화인류학, 법학, 정치학 네 개 과목을 공부해야 하는데 정말 그렇게 수업을 듣고 시험을 볼 수 있을까라는 의문을 남긴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공부 부담이 다른 과목의 절반에 불과한 경제와 한국사 과목을 선택할 것이다. 이는 연구회가 경제와 한국사를 다른 과목과 동등하게 배치함으로써 학생들의 시험 과목 선택을 특정 과목으로 유도하고 학교에서 배울 내용을 통제하고 있는 우를 범하고 있다. 누가 봐도 고등학교에서는 수능 과목인 경제 혹은 한국사만을 개설하고 학습시키고자 하는 의도인 것이다. 이는 학생들의 과목 선택권과 학습의 다양성을 무시한 처사이며, 일반사회에서 경제 과목을 독립시키려는 발상으로 밖에 이해할 수 없는 처사다.
수능개편안이 설령 바람직한 취지를 갖고 있다 할지라도 수능시험에 반영되지 않거나 점수를 따는데 불리하다고 판단되는 과목은 지금의 고등학교 교육 현장에서 외면받을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적어도 우리나라에서는 결국 수능 시험이 고교 교육에 미치는 영향은 막대하다. 이와 관련해 개편안 발표회 자유토론에서 연구회의 수능체제 개편 분과장인 백순근 교수는 "사실 수능은 평가이고 꼬리에 불과하다"면서 "교육 과정이 있고 궁극적인 교육의 목표가 있는 상황에서 꼬리가 이러한 몸통을 흔드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우리의 교육 현장에서는 수능 과목수 축소로 인해 국·영·수로의 무차별적 집중이 일어날 것이다. 지금도 그럴진대 수능 여건이 국·영·수로 편향되니 이 쏠림 현상은 더욱 심화될 수밖에 없다. 이로 인해 학교 현장에서는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나고 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