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컴패션 사무실에 도착하는 후원자들의 편지는 어린이가 보내오는 편지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한국 후원자를 둔 어린이가 전세계에 총 8만여명인데, 결연 이후 한번도 편지를 받아보지 못한 어린이 수가 3만3천여명에 달한다. 어린이센터의 다른 친구들이 해외 후원자로부터 사진이 든 편지를 받아볼 때, 부러운 시선으로 그저 바라보기만 하는 어린이의 심정은 어떨까? 답장은 받을 수 있을거란 기대감으로 열심히 소식을 전했지만, 한 달 두 달이 지나도 단 한 장의 편지를 받아보지 못할 때의 그 기다림은 또 얼마나 애가 닳을까? 문득문득 미안한 마음이 들긴 하지만, 바쁜 일상에, 더구나 우리한테는 때마다 편지나 카드를 써 보내는 일이 익숙하지 않기에, 시간을 내고 정성을 쏟아 편지를 쓴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어린이에게 후원자의 편지가 어떤 의미인지 잘 안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수혜국 현지에 가서 가정방문을 할 때면, 어린이들은 "너희 후원자는 어떤 분이니"라는 질문에 하나같이 고이 간직했던 편지를 자랑하듯 꺼내 보인다. 어린이들에게 편지는 즉, 유형으로 느껴지는 후원자의 '존재감'인 것이다. 편지를 받고 읽는 순간과 과정은 어린이를 세상의 주인공으로 만들어 준다. 내용이 짧든 길든 종이 위의 글씨들이, 이젠 혼자가 아니란 걸 일깨워준다. 이 만큼 소중한 편지들이 수혜국의 열악한 체신 사정으로 인해 분실되어선 안되기에, 대부분의 현지 사무실에서는 상당량의 편지를 인편으로 직접 전달하고 있다.
태국 컴패션에서 이 일을 담당하고 있는 직원인 앨런은 편지의 '힘'을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다. 그는 아홉 살부터 열여덟 살까지 9년동안 컴패션 후원을 받으며 성장한 '컴패션 출신'이다. "가뜩이나 수줍음이 많고 자신감도 부족했던 나에게만 유독 편지가 안 왔다. 친구들은 내가 못생겼기 때문에 후원자가 편지를 보내지 않는다고 이야기했고 나는 그 이야기를 듣고 '맞아, 맞아'하며 울었다. 그러다 마침내 편지를 받게 되었는데, 그 안에 "너를 아주 많이 사랑하며 냉장고에 네 사진을 붙여놓고 매일 기도한다'는 글이 쓰여 있었다. 그제서야 나는 자신감을 회복할 수 있었다…" 앨런에게 그랬듯, 후원자의 편지 속 단 한 문장이 어린이들의 삶을 바꾼다.
50년 전, 우리나라 어린이들이 해외 후원자들로부터 도움을 받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마산의 보육원에서 지내던 백이선 목사는 고등학생때, '목사가 되라'는 후원자의 편지 때문에 신학교에 진학했고, 광주의 고아원에서 자란 한명동 원장은 의사였던 후원자를 좇아 의사가 되었다.
글은 말보다 강하다. 또, 때로 편지에 적힌 메시지는 직접적인 만남을 통한 충고보다도 강력하다.
지난 1월 아이티 지진 직후에, 가수 션씨는 후원하던 어린이 중에 '신티치'라는 여자 아이의 집이 피해가 극심한 지역에 위치한다는 사실을 알고, 부랴부랴 그녀의 생사를 물어왔다. 션씨가 더욱 노심초사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하나 더 있었는데, 신티치가 그 무렵 보낸 편지에 '다음 생일에 받고 싶은 게 있어요. 후원자님의 사진을 보내주세요. 어떻게 생긴 분인지 궁금해요'라는 부탁이 있었던 것. 션씨는 답장도 못한 그 편지가 마지막일까 전전긍긍했다. 그로 부터 두 달이 지나서야 신티치가 무사하다는 소식이 전해졌고, 우리 모두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리고 션씨는 미안한 마음에 직접 아이티로 날아가 신티치에게 사진 대신 진짜 얼굴을 보여주고 돌아왔다.
어린이들이 편지를 기다린다. 후원자가 누구인지 궁금해한다. 자신과 지구 반대편의 후원자를 인연으로 묶어준 축복을 함께 감사하고, 그 기쁨을 나누고 싶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