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한구 (수원대교수·객원논설위원)
[경인일보=]지난 4월 금융감독위원회는 연간 매출액 9천600만원 미만인 신용카드 가맹점들에 한해 수수료율 인하를 단행했다. 재래시장 내 점포에는 기존의 2.0~2.2%에서 1.6~1.8%로, 재래시장 이외 가맹점들에는 3.3~3.6%에서 2.0~2.15%로 각각 끌어내렸던 것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로 영세자영업자들이 고전중인 점을 혜량한 조치였다. 이명박정부의 친서민정책의 일환이기도 했다.

그러나 최근 중소기업중앙회가 비씨, 국민, 신한, 삼성, 현대 등 8개 주요 카드사들의 수도권 영세가맹점 200곳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이중 29.5%인 59곳은 수수료 인하혜택을 전혀 못받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인하혜택을 받고 있다고 응답한 나머지 141곳의 경우에도 당초 금감위가 공표했던 인하폭에 훨씬 못미쳤다. 재래시장 내 가맹점의 수수료율은 2.06~2.26%였으며 재래시장 이외의 경우는 2.28~2.37%였던 것이다. 카드사들이 정부의 강요에 못이겨 수수료인하 시늉만 한 것으로 추정된다. 대표적인 카드사들이 이지경인데 나머지 업체들의 실상은 더 심할 수도 있을 것이다. 수수료인하가 영세가맹점 경영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았다는 주장에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신용카드사들의 영세가맹점 역차별 시비는 어제, 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수수료율이 백화점 및 대형할인마트에 비해 턱없이 높다는 여론의 압력에 굴복해서 2007년 11월 이래 몇 차례 찔끔찔끔 수수료율을 내려 오늘에 이른 것이다. 그 와중에서 카드사들은 이구동성으로 수수료 인하가 적자경영을 초래할 것이라며 항변했었는데 경영성과는 어떠할까. 카드사들의 영업이익은 카드대란을 겪은 2003년 8조5천410억원의 적자에서 지난해에는 2조3천95억원을 기록하는 등 6년 만에 무려 11조원의 대박을 터뜨렸다. 특히 지난해에는 금융위기에 따른 경기침체로 소비가 위축된 상황에서도 발군의 성적을 시현, 표정관리 하기에 급급했다. 가계소득수준이 향상되고 카드사용 문화 정착에 따른 신용판매부문이 급신장한 탓이다. 포인트 적립, 무이자 할부, 소액결제비중 확대, 연회비의 지속인상 등 공격적인 마케팅도 한몫 거들었으나 이쯤 되면 영세가맹점들에 대한 수수료 인하로 적자경영이 불가피하다는 카드사의 논리는 설득력이 없어 보인다. 하나금융연구소는 지난달에 발표한 '2010 하반기 경제금융보고서'에서 "가맹점 수수료 인하, 현금서비스 취급수수료 폐지 등이 수익확대를 제한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는 있으나 영향력은 크지 않을 것"으로 진단한 바 있다.

정부를 비롯한 정치권의 대응도 주목거리이다. 금감위는 2008년 8월부터 가맹점들이 카드 대신 현금을 지불하는 고객에게 카드수수료만큼 값을 깎아주도록 하는 내용의 여신전문금융업법 개정작업에 착수했다. 현금영수증제가 정착되어 세금탈루여지가 크게 줄어든 데다 물가안정 및 소비자후생 증대라는 어부지리까지 기대된 터였다. 현금사용 고객에 대한 할인이 일반화된 유럽의 사례는 반면교사였다. 그러나 작업에 착수한지 2년을 훌쩍 넘겼으나 법률개정안은 여전히 국회 계류중이어서 이 정책은 햇빛을 볼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그 와중에서 한나라당 주도로 추진하던 카드영수증 매입회사 설립, 직불 및 체크카드활성화대책 성과도 전혀 가늠되지 않는다. 카드사들의 극렬반대 때문으로 짐작되는 터여서 수수료인하성과가 속빈 강정인 것만도 다행이란 생각이다.

경제성장률이 지난 1분기 8.1%에 이어 2분기에는 7.2%를 기록, 2000년 이후 10년만에 최고수준이나 자영업경기는 여전히 싸늘하다. 전국 16개 시도의 경제행복지수 하락이 이를 방증한다. 자영업자수 또한 올 1분기 551만4천명으로 외환위기 때인 1999년 1분기 이후 최저 수준이다. 오죽했으면 지난 8월 30일 한나라당 의원연찬회에서 "말로만 서민 운운하고 있다"며 자아비판의 목소리가 불거졌겠는가.

글로벌시대를 맞아 대기업의 국내 경제적 역할이 점차 축소되는 상황이다. 국민경제의 근간(根幹)인 자영업활성화야말로 유효한 대안임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