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회가 선진화한다는 것은 기회의 평등이 보장되는 사회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도리어 이런 측면에서 후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중산층의 일부가 빈곤층으로 내려가고 빈부의 격차는 심화되는데, 빈부의 격차는 학력의 격차로 이어져 계층의 세습화와 고착화를 부채질하고 있다. 과거에는 능력있고 성실한 젊은이들이 사회에 진출할 기회가 있었지만 그 기회의 문이 점점 좁아지고 있다.
이명박 정부는 지난달 소위 '공무원 채용제도 선진화 방안'을 발표했다. 이 개편안의 핵심은 내년부터 5급 신규 공무원의 30%를 민간 전문가 가운데서 뽑고 이를 점진적으로 확대해 2015년부터는 신규 공무원의 절반을 전문가로 채우겠다는 것이다. 더욱이 시험 방식도 현행 필기시험 위주의 고시가 아닌, 서류전형과 면접만으로 합격자를 가리도록 하는데 학위 및 자격증 소지자나 전문분야 경력자를 우대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문제는 서류전형과 면접만으로 뽑는 채용방식이 '가진 자'에게 절대 유리하다는 것이다. 이번 유명환 장관 딸의 외교부 특채 사건은 많은 국민의 사기를 떨어뜨리고 분노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이번 사건처럼 응시 조건과 심사위원 선정과 심사과정까지 불법과 탈법으로 얼룩진 경우는 예외라 하더라도 아무리 공정하게 이 제도를 운영한다 하더라도 그 경쟁은 처음부터 불공정한 것이다.
전문가를 우대해서 뽑는다고 하면서 학위를 강조하는데 대학 입학해서 박사학위를 받기까지 십여년을 돈을 벌기는커녕 억대의 돈을 써야 하는데 합격할 확률이 극히 낮은 그 기회를 바라고 장기간 투자를 서민들이 할수 있겠는가? 당장 낮은 급여의 일자리라도 얻어서 푼돈이라도 벌어야 하는 서민들에게 장기간의 투자가 필요한 특채는 '당신들만의 잔치'가 될 것이다.
문제는 서민들 자녀가 절대적으로 불리한 불공정 경쟁이 대학입시에서부터 시작된다는 사실이다. 필자가 대학에 입학하던 70년대에는 오로지 입학시험 하나로 합격을 결정했다. 그런데 지금은 입학사정관제가 도입되고 대학마다 다양한 입학전형을 도입하고 있다. 입학 사정 방식을 다양화할수록 서민들의 자녀는 절대로 불리해진다. 강남의 '있는 집' 자녀들은 '스펙'을 쌓기 위해 중·고등학교 시절부터 외국에 나가서 1~2년씩 어학연수를 하기도 하고 방학동안에 수백만원씩 들여서 동남아시아나 아프리카에서 국제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따라서 입학사정관들 앞에 서면 자기의 온갖 다양한 국제경험에 대해 자신만만하게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시골에서 책만 읽다가 올라 온 죄 없고 눈 맑은 청소년들은 빈약한 자기 경험 때문에 면접서류에 '글로벌 시대에 부적합한 아이'로 분류가 되어 불합격의 쓴 잔을 받게 될 것이다.
그럼 이런 문제를 어떻게 하면 해결할 수 있을까? 우선 국가의 특별교육기금을 통해 폭넓은 장학제도가 마련되어야 한다. 그래서 가난한 아이들도 능력만 있으면 원하는 공부를 할 수 있는 길을 확보해줘야 한다. 만약 로스쿨이 꼭 필요한 제도라면 로스쿨의 30% 정도는 전액 장학금 제도를 만들어서 오로지 공부만 잘해도 로스쿨을 졸업할 수 있는 길을 터줘야 한다. 그래야 가난한 서민의 자녀도 법관이 될 수 있는 길이 열릴 것이다. 우리나라 특권층은 소수일 수밖에 없다. 특권층이 아닌 서민들이 희망을 갖는 사회가 밝고 바람직한 사회이다. '공무원 채용제도 선진화 방안'이 그들만을 위한 선진화가 되지 않도록 특채 제도를 폐지하거나 극히 제한하여 더 이상 특권층만을 위한 선진화방안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