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소프트웨어 산업은 1990년대 강남의 테헤란로를 중심으로 다수의 벤처기업이 창업되면서 본격적으로 발전하였다. 테헤란밸리가 포화상태에 이른 2000년대 이후에는 그 구심점이 구로의 디지털 산업단지로 전환되었다.
소프트웨어 산업이 서울 중심으로 발전하게 된 이유는 두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서울은 소프트웨어 산업이 필요로 하는 하부구조, 즉 생태계가 가장 잘 갖추어진 곳이다. 우수한 소프트웨어 전문인력이 가장 풍부하며, IT와 관련한 세계 시장 동향, 기술정보 등을 가장 손쉽게 얻을 수 있다. 나아가 이공계 대학, 벤처캐피털, 금융기관 등 소프트웨어 산업을 간접적으로 지원하는 조직들이 인근에 존재한다. 둘째, 서울에는 소프트웨어 산업과 관련된 전후방 관련 산업이 다수 집적되어 있어서 상호 협력과 네트워킹이 용이하다. 소프트웨어의 수요처도 서울에 가장 많다.
이런 서울의 입지적 장점 때문에 서울 이외의 지역에서 소프트웨어 산업을 진흥하기가 앞으로도 쉽지는 않을 것으로 판단된다. 그러나 서울 중심의 산업 구조는 서울의 과밀화와 수도권 교통난을 촉진할 뿐 아니라 소프트웨어 산업의 향후 발전에도 바람직하지 않다. 저렴한 가격에 아파트형 공장을 공급하면서 소프트웨어 산업의 요람으로 성장한 구로 디지털밸리도 이제는 포화상태로 공장과 사무실의 가격이 비싸다. 또한 근처의 유휴 토지도 거의 다 사용되어 앞으로 확장에 필요한 신규 토지의 공급이 어렵다.
정부는 소프트웨어 산업을 미래의 성장동력으로 선정하고 이 산업을 진흥하기 위해 다양한 정책을 펴고 있다. 소프트웨어 산업의 인력을 현재 12만명에서 향후 3년 이내에 28만명으로 증가시킨다는 야심찬 비전을 올 2월에 발표한 바 있다.
정부의 발표가 아니라도 소프트웨어 산업의 입지 수요는 앞으로 계속 증가할 것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이를 거꾸로 해석하면 소프트웨어 산업을 앞으로 계속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산업이 필요한 입지 수요에 적절히 대처해야 한다는 것이다. 어떤 산업이든지 산업 육성 계획에서 핵심은 산업이 어디에 입지할 것인가라고 할 수 있는데, 이런 원칙은 소프트웨어 산업에도 적용된다.
서울은 이미 만원인 상태에서 소프트웨어 산업 입지로 우선적 후보지역은 경기, 인천 등 수도권의 지방 중소도시이다. 수도권은 서울이 보유한 장점을 대부분 공유하고 있으며, 서울과는 달리 소프트웨어 산업을 위해서 추가적으로 공급이 가능한 입지를 풍부하게 보유하고 있다. 또한 인력 공급, 글로벌 정보의 접근성 면에서 서울에 비해 손색이 없다.
서울에서 수도권으로 소프트웨어 산업을 확산시키기 위해서는 기존의 산업 입지 공급 정책에 변화와 새로운 발상이 필요하다. 신도시의 외곽에 작은 규모의 산업 단지를 공급하는 방식으로는 소프트웨어 산업과 같은 미래의 지식 산업을 배양하기 어렵다. 높은 임대료에도 불구하고 기업이 왜 테헤란밸리, 디지털밸리를 선호하는가에 대한 면밀한 분석이 필요하다. 소프트웨어 산업은 대표적인 도시형 산업이라는 점이 강조되어야 한다.
산업 입지 정책에 대한 중앙정부 및 지방정부의 발상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소프트웨어 산업과 같은 도시형 지식기반산업을 육성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산업단지 개념도 맞지 않고, 소규모 파크형 테크노밸리 개념도 맞지 않다. 서울의 테헤란밸리, 디지털밸리 같은 대형 밸리를 벤치마킹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수도권에서 소프트웨어 산업의 가능성이 높은 후보 도시를 선정하고, 이 도시를 재구성하는 노력을 시작해야 한다. 지식산업과 주거, 문화가 어우러지는 미래형 창조도시를 조성하여 소프트웨어 산업의 미래 발전 기반을 제공해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