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과 가장 닮은 예술품이 있다면 무엇일까. 조선백자가 아닐까 싶다. 백자는 '한국 미'의 대명사로 불릴만큼 '멋'에 있어서 단연 으뜸으로 꼽힌다. 최고의 미적 가치를 보여주는 조선백자에는 '달항아리'라는 이름이 붙었다. 일반적으로 18세기 전반에 만들어진 큰 백자를 소위 달항아리라고 한다.
정양모 전 국립중앙박물관장은 이 달항아리를 설명하면서 "18세기 전반의 큰 항아리는 전세계적으로 그러한 유형이 없는 독특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고 했다. 백자는 또 실용성에서도 뛰어난데, 그것은 많은 것을 담을 수 있게 한 '텅 빔(虛)의 조형성'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백자가 주는 '빔'의 가치와 둥그런 조형미는 달에게서도 볼 수 있다. 달은 꽉 찬 풍만함을 오래 간직하지 않는다. 찼다하면 금세 비우기 시작한다. 차고 이지러지기를 보름마다 반복한다. 끊임없이 비우는 게 달이다. '비워야 채울 수 있다'는 말을 온 몸으로 보여주는 듯하다.
우리나라에서 달과 항아리의 아름다움을 가장 잘 표현한 화가를 꼽으라면 단연 수화(樹話) 김환기가 될 것이다. 전남 신안의 안좌도가 고향인 수화는 아마 어릴 적 달 밝은 밤과 물 항아리를 이고 안은 아낙네들에게서 받은 인상을 그의 예술세계의 중심으로 활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 서양화가 중에서 국내외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수화는 문학적 재능도 뛰어났다고 알려져 있는데, 수화는 백자를 일러 "백자 항아리 궁둥이를 어루만지면 글이 저절로 풀린다"고 표현하기도 했단다. 웃음을 짓지 않을 수 없게 하는 해학미가 놀라울 정도다. 수화는 '멋의 화가이자 산문가'로도 불렸다. 달과 항아리가 주는 '멋'에 제대로 빠졌던 모양이다.
엊그제 추석 저녁에 보름달을 보고, 문득 항아리 백자 생각이 났다. 그리고 '비움(虛)의 미학'으로까지 옮겨 갔다.
인천은 요즘 지방선거의 후폭풍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 물갈이 바람이 거세다. '자리'를 새로 차지하려는 사람과 지키려는 쪽에서 다툼도 심하다. 비난이 난무하고, 알력도 생기고 있다. 정치가 가져다주는 만상 중의 하나다. 너무 자기 욕심만 차리면 아무 것도 채울 수 없는 '쪽박'이 될 수도 있다. 이 얘기에 대다수 정치인은 고개를 돌리고, 귀를 막겠지만 말이다. 정치인의 눈에는 달이 가진 '비움의 멋'보다는 화려한 보름달의 충만함만이 비칠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