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삼웅(전 독립기념관장)
[경인일보=]누군가 '노래는 추억의 묘비명'이라 했지만, 노래는 시대와 상황에 따라 '저항의 메시지'가 되기도 한다. 한말ㆍ일제 강점기에 불렸던 민요와 유행가 중에는 어떤 선언문이나 격문에 못지 않는 민초들의 분노와 항쟁이 담겼다.

동학농민혁명 과정에 '파랑새 노래'가 유행하였다.

"새야 새야 파랑새야

녹두밭에 앉지마라

녹두꽃이 떨어지면

청포장수 울고간다."

이 노래는 누가 짓고 가사를 붙였는지 알 수 없는, 그야말로 민요이고 참요였다. 가사중에 '파랑새' 는 전봉준과 그를 따르는 민중을 의미한다. '파랑'은 '팔왕(八王)' 즉 전(全)의 파자로 전봉준을 의미하며 '새'는 민중 즉 동학농민군을 뜻한다.

의병들이 일제와 싸울 때에 '새타령' 등이 판소리 형식으로 불렸다. 이 노래는 지금도 그 의미를 잘 이해하지 못한 채 불린다.

"남원산성 올라가 이화문전 바라보니

수진이 날진이 해동청 보라매 떴다.

보아라 종달새 이 산으로 가며 쑥국쑥국

저 산으로 가며 쑥국쑥국

어야허 어이야 등가 내사랑이라."

여기서 '남원산성' 은 남원의 지명이 아니라 '남은(餘) 산성(山城)' 곧 일제가 지배하지 못한 의병의 주둔지를 말하고, '이화문전(梨花門前)' 은 '이왕문전(李王門前)' 을 뜻한다. 조선조의 상징은 배꽃 즉 '이화' 였다. 수진이(사냥매), 날진이(야생매), 해동청(海東淸) 보라매는 모두 조선의 전통적인 사냥매를 일컫는 것으로 여기서는 의병을 말한다.

종달새는 백성(민중)을 의미하고, '쑥국'은 수국(守國) 즉 나라를 지키자는 뜻이고, '어야허' 는 조상신 호국신을, '등가(登歌)' 는 궁중의 종묘악으로 임금과 국태민안을 축원하는 아악을 말한다. 왕조시대의 애국가인 셈이다.

국운이 풍전등화와 같았을때 의병들이 호국의 의지를 담아 부르던 이 노래가 후대에 와서 원래의 정신은 간데없고 단순히 '새타령' 정도로 불려지고 있는 것은 안타까운 노릇이다.

"어라농부 말들어 어라농부 말들어

서마지기 논베기가 반달만치 남았네

일락서산 해 떨어지고 월출동령에 달 떠오르네

어화어화 상사디어 어화어화 상사디어."

모심기나 벼 베기 때에 부른 '농부가'에도 항일의 의지가 담겼다. 이 노랫말의 핵심은 '일락서산(日落西山)' 과 '월출동령(月出東嶺)' 에 있다. 서산에는 해(일본)가 떨어지고 동녘에는 달(초승달 : 조선) 이 떠오른다는 의미다. 일제의 패망과 조선의 독립을 바라는 소망이 담긴다. 예부터 일본은 해, 조선은 달을 상징으로 삼았다.

"시베리아 찬바람이 지구상에 떨치니

보기는 죽은듯 하나 실상은 살았도다

버려지는 땅에서 들석들석 하면서

양춘가절 기다리면서 나오기를 힘쓰네."

'부활'이란 유행가로서, 시베리아의 한인들과 망명 독립운동가들이 즐겨 불렀다. '양춘가절' 은 독립, 해방의 날을 의미한다.

"삼백년 원한 품은 노적봉 밑에 님 자취 완연하다 애달픈 정조

유달산 바람도 영산강을 안으니 님 그려 우는 마음 목포의 눈물."

이난영이 부른 '목포의 눈물' 2절이다. '삼백년 원한 품은 노적봉'은 바로 300년 전 정유재란 당시 이순신 장군이 짚과 섶으로 바위를 둘러쳐 군량미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것처럼 하여 왜적을 물리쳤다는 역사의 기억을 은유했다. 우리 선대들은 유행가 가락 하나에도 항일독립의 의지를 담았다. 요즘 '사랑 타령'으로 시종하는 유행가와는 큰 차이가 있었다. 올해는 경술국치 100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