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은환 (인천본사 편집경영본부장)
[경인일보=]몇 해 전 정치권에서 질풍노도(疾風怒濤)라는 말이 유행한 적이 있다. 무섭고 빠르게 부는 바람처럼 국정 운영에 있어서 속도를 내겠다는 취지에서 나온 말이다. 당시 현 정부가 집권 1년차를 온통 촛불 진화로 허비해 버리자 주어진 기간이 그리 길지 않다고 판단한 조급증이 발동했던 것이었다. 속도전의 중심에는 평소 '불도저'라는 별명을 듣던 이명박 대통령이 있었다. 남은 임기동안 속도를 내서 뭔가 실적을 올려야만 한다며 속도전 카드를 꺼내 들었고, 여권은 질풍노도라는 말로 힘을 실어줬다. 물론 국민들도 당시에는 대통령 못지않게 속도전을 원했다. 세계 경제의 위기상황에서 우리끼리 내부에서 다툼만 하고 있기엔 너무나 급박했기 때문이다.

'속도전'은 원래 칭기즈칸의 발명품이다. 유럽의 기사들이 70㎏이나 무장해 움직일 때, 몽골 기마병은 5분의 1에 불과한 무게로 속전속결의 전쟁을 수행했다. 유럽은 수만명 단위로 이동하는 돌파력 위주였지만 열명·백명·천명 단위로 수시로 쪼개지고, 뭉치는 몽골군에게는 기습의 대상일 뿐이었다. 정면충돌 보다는 유연한 우회전술에 속도전이 합친 승리였다는 게 역사학자들의 평가다. 그만큼 속도전에는 전술과 전략이 필수다.

현대사회에서 속도전은 필수라곤 하지만 꼭 성공만 있는 게 아니다. 전략과 전술이 있어야 하고, 진정성이 있어야만 성과를 낼 수 있다. 고집스럽게 밀어붙인다고 해서 그 결과가 반드시 성공으로 이어지진 않는다. 속도전을 벌이다 급브레이크가 걸렸던 미디어 관련법이나 한미 FTA(자유무역협정), 세종시 추진 등을 우린 보지 않았는가. 인천만 해도 151층 인천타워 건설, 밀라노시티 추진 등 한두가지가 아니다. 바로 이 것이 준비 안된 속도전이 주는 교훈이다.

요즘 인천에서 또 다시 속도전 얘기가 나온다. 내주면 송영길 인천시장이 벌써 취임 100일을 맞지만, 아직까지 시정방향 조차 분명치 않자 조바심이 발동한 것이다. 남은 임기(4년)를 감안하면 시간이 부족한 건 사실이다. 뭔가 성과를 내고 실적을 올리고 싶은 심정을 이해 못하는 바가 아니다. 그렇다고 전략과 전술이 없는 속도전만을 앞세운 시정은 느림보 행정만 못하다. 아시안게임 주경기장만 해도 그렇다. 전임시장이 결정한 서구 주경기장을 '속깊은' 검토없이 몇몇 사람의 얘기만 듣고 성급하게 백지화를 들고 나왔다가 원위치 시켰다. 결국 지역간의 분열만 조장시키고, 시간만 허비한 꼴이 됐지만 그 대가는 의외로 크다는 지적이다. 속도전은 인사에서도 나타난다. 시산하 기관의 장은 물론이고, 고위 간부들까지도 교체압력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 그러다보니 각 기관의 간부급들이 자리보전에 신경을 쓰느라 일손을 놓은 지 오래다. 시장이 새로 취임했으면 그의 철학에 맞춰서 일할 사람을 보강하고, 교체하는 걸 두고 뭐랄 사람은 없다. 그 도가 지나치다는 게 문제라는 얘기다.

인천시민들은 송 시장에 대한 기대치가 크다. 젊고, 개혁적인 그가 인천이 안고 있는 난제들을 추진력있게 풀어갈 것이란 희망이 표심으로 작용해서 그가 선택됐다. 그 표심에는 인천시정의 내실있는 속도전도 포함돼 있다고 본다. 그러나 속도전에도 우선순위가 있는 법. 그 선·후가 뒤바뀔 땐 불신이 쌓이게 마련이다. 이 시점에서 맨 앞 서열에 둬야할 속도전의 대상은 과연 무엇일까. 그 결정이 1순위라고 본다.

송 시장은 앞으로 할 일이 많다. 약속대로 '경제수도'를 건설해야 하고, 인천의 난제들을 하나하나 풀어가야 한다. 무엇보다 임기를 마칠때 시민의 박수를 받는 시장이 되어야 한다. 그게 그의 희망일 뿐만 아니라 인천을 위해서도 꼭 그렇게 되어야만 한다. 진정한 '인천시민 시장' 되는 길은 첫 단추가 중요하다. 초장부터 특정 정당에 의해 좌지우지 되거나, 특정 계파나 지연·학연·혈연에 의해 움직여지는 시장, 시민위에 군림하려는 시장이 되길 누가 원하겠는가. 송 시장 또한 그런 어리석은 일은 하지 않을 것으로 기대한다. '큰 꿈'을 갖고 있다는 그가 과연 추구하는 진정한 속도전의 우선순위는 무엇인지, 또한 시민을 받들어 모시는 진정한 목민관이 될지 시민들은 주목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