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음을 접하고 집 문에 조기를 다는 심정으로 도서관에서 그의 책을 빌려 늦은 밤까지 읽었다. 역시 내 가슴 속으로 깊은 강물이 흘렀다. 그 유장한 물굽이에 한 도막 생각을 실어 흘러가보기로 하자.
유신의 칼날이 서슬 퍼렇던 70년대에 대학을 다닌 나는 학교 정문에 탱크가 진을 치고 총검을 꽂은 군인들이 보초 서던 광경을 또렷이 기억한다. 그리고 그 살벌하였던 기억은 아직도 내 영혼에 깊은 상흔으로 남아 있다. 무수한 젊은 피를 거름삼아 이제 더 이상 정치적 혼란이 군사쿠데타로 이어질 것이라는 기우를 하지 않는 시대를 누리고 있다. 누구 말대로 민주주의가 우리네 정치의 유일한 게임 규칙이 된 것이다.
그럼에도 이른바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에서 민주주의의 향기를 맡기 쉽지 않다. 이윤기의 글을 읽다가 그 연유의 한 자락을 찾아내었다.
사람이 살다보면 사람들 간에 갈등이 없을 수 없고 그런 갈등을 힘이 아닌 말로 해결하는 보편적 방식의 추구가 바로 민주주의의 요체다. 특히 한국처럼 갈등의 다양한 국면이 폭발적으로 내장된 사회에서는 말의 쓰임새가 특히 중요하다. 남북문제가 그렇고 지역문제가 그렇고 점점 더해가는 계층 간 격차문제가 그러하다. 여기에 더하여 최근에는 세대 간의 문제까지 더해졌다. 대화하는 상대에 대한 불신이 깊으니 옅어지는 것은 관용의 정신이요 더해가는 것은 성마른 조바심이다. 진보와 보수라는 이념적 대립을 이윤기의 거울에 비추면 비례(非禮)의 언사로 되비침 될 것이다. 왕왕 이념대립의 실체는 알맹이 빈약한 막말 경쟁이라는 것이다.
이윤기가 선호하는 입말(口語)의 핵심은 Be More, Seem Less라는 명령문에 들어 있다. '보기보다는 큰 놈이 되어라' 정도로 해석 가능한 이 문구는 '무겁게 알아들을 수 있도록 가볍게 말하고, 똑바로 알아들을 수 있도록 에둘러 말해야한다'로 전환 가능하다. 상대의 기분을 헤아리는 은근한 겸양의 미덕과 그에 기댄 튼실한 내용 전달이 입말의 핵심이라는 지적이다. 하지만 그게 어디 쉬운가.
한 평론가가 방법을 알려준다. 가장 하고 싶은 말은 아끼는 대신 "나란히 서서 걷는 두 사람의 손등이 계속 스치듯 조짐을 형성"하는 화법을 구사하는 것이다.
대립각을 세운 상대에게 내질러 답하면 속은 시원할지 몰라도 소통은 거기서 멈춘다. 화끈한 우리네 민심이 그렇고 이런 성깔을 이용한 정치 마케팅이 국회에서 판을 친다. 저녁 뉴스 시간에 어쩌다 듣는 북한 아나운서의 언사는 우리네 국회보다 몇 수 더하다.
10대 종손이며 비기독교도인 나는 아버님이 개종 후 예배와 찬송으로 주관하시는 제사며 추석상이 내심 마뜩찮다.
그럴 때는 이렇게 여쭈어야하지 않겠는가? "아버님, 작년 시제(時祭)때 유세차(維歲次)… 하시던 축문 소리가 참 좋았습니다. 아버님 문장에 비하면 저는 초등생도 못됩니다." 아버님이 이렇게 답하실 것이다. "아비야. 나는 네 찬송가 소리도 듣기 좋더구나." 가정에서건 나라에서건 민주주의는 이념에 앞서 말하는 예의로부터 시작된다. 말로 싸워야하는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에서는 더욱 그러할 것이다.
선생의 영전에 재배하며 서툰 그곳 말투로 한 말씀 드린다. 우야 이리도 서둘러 가시니껴? 너무도 서운 하니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