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인일보=오동환 객원논설위원]기부에는 자발적인 기부와 '자의 반 타의 반'의 눈치 기부, 강요에 의한 공포성 기부가 있지만 스스로 원해서 바치는 첫 번째 경우가 지극 갸륵한 이른바 '원납전(願納錢)' 기부라면 두 번째는 할까 말까 고민 끝의 기부다. 문제는 세 번째 경우, 즉 '원납전(怨納錢)'―원망스런 기부다. 조선왕조 말기 고종 2년의 대원군(大院君)은 경복궁 중건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민간에 강제로 기부금을 내도록 부과했다. 그가 공사를 완공한 고종 5년까지 거둔 기부금은 770여만 냥이었다. 세금이나 다름없는 그런 기부금을 가로되 '원망할 원(怨)'자의 원납전(怨納錢)이라 한다. '願'이 아닌 '怨'의 기부인 원납전은 우리 현대사의 권위주의 정권 때도 약여(躍如)히 작용했고 할당 세금―기부금을 안내려고 뻗대다가 탈세범처럼 괘씸죄에 걸려 그룹 전체가 공중 분해된 재벌까지 있지 않았던가.

기부라면 황혼 빛이 주름살 얼굴에 비낀 만년 기부가 보통이다. '공수래공수거'를 절감할 노년에 평생 모은 재산을 한 점 타의(他意) 첨가도 없이 흔쾌히 기부하는 경우다. 그런데 단발에 그치지 않고 계속 기부하는 노년의 부호들도 쌨다. 지난 7월 초 미국의 '빌 앤드 멜린다 게이츠 재단'에 무려 1조9천500억원을 기부한 80세의 세계적인 투자가 워런 버핏부터 그렇고 그와 동갑이자 역시 세계적인 투자가인 존 소로스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황혼도 아닌 대낮의 나이인 55세의 빌 게이츠처럼 전 세계 자선단체에 해마다 거액을 기부하는 경우는 거의 없고 그와 동갑인 홍콩 영화 스타 저우룬파(周潤發:주윤발)가 사후에 재산의 99%(1천280억원)를 기부하겠다고 지난달 선언한 것도 쉽지 않은 경우다.

더욱 드문 예는 한창 돈벌기에 바쁜 젊은 나이의 기부다. 뉴욕타임스는 지난달 22일 '페이스북의 CEO 마크 주커버그가 공교육 개혁을 위해 1억 달러를 기부키로 했다'고 보도했다. 그는 아침햇살의 나이인 26세 청년이다. 영화계의 원로 신영균(82)씨의 500억원 기부가 화제지만 그야말로 화려한 인생, 멋들어진 황혼이다. 손바닥이 터지도록 박수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