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양기대 (광명시장)
[경인일보=]논어에 무신불립(無信不立)이라는 말이 나온다. 믿음이 없으면 설 수 없다는 말로 정치나 개인 관계에서 신뢰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이다. 특히 정부를 비롯한 공공기관의 약속은 천금같은 무게를 갖고 지켜져야 한다. 국토해양부(이하 국토부)가 경부고속철도 2단계 구간(동대구~부산) 운행개시에 맞춰 10월6일 KTX 열차 영등포역 정차를 발표한 것은 정부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를 스스로 포기한 처사라고밖에 볼 수 없다. 피해 당사자인 광명시민들이 영등포역 정차결정을 강력히 규탄하고 철회를 촉구하는 등 심각한 갈등상황이 빚어지고 있는데 이는 정부가 자초한 결과이다. 정부는 국토의 균형발전과 도심권 교통혼잡 완화, 서울의 인구집중완화 등을 위해 국비 4천68억원을 들여 일일 평균 이용승객 5만7천893명을 예상하여 시발역으로 광명역사를 건립하고 2004년 4월1일 개통해 우리나라는 바야흐로 고속철도시대를 맞았다.

그러나 2004년 10월부터 KTX 영등포역 정차문제가 대두되자 광명시는 인근의 과천, 군포, 시흥, 안산, 안양, 의왕 등 6개시와 함께 '고속철영등포역정차반대 범시민대책위원회'를 구성하여 철도공사 항의방문과 농성에 이어 청와대, 국회, 국토부, 철도공사에 청원서를 제출했으며 결국 2005년 국토부로부터 영등포역에 정차하지 않겠다는 확답을 받은 바 있다. 올 6월에는 KTX 영등포역 정차추진위원회가 국민권익위원회에 영등포역 정차 민원을 제기했지만 당시 국토부는 광명역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반대의사를 분명히 했다.

이처럼 영등포역 정차계획이 없다고 밝혀온 국토부가 광명시를 비롯한 해당 7개 자치단체 등과 아무런 사전 협의 없이 일방적이고, 전격적으로 영등포역 정차를 발표한 것은 주민들을 우롱한 처사라는 비판이 거세다. 국토부의 관계자가 광명시민들의 거센 반발을 우려한 탓인지 영등포역 정차계획을 발표한 뒤 서둘러 광명시를 방문해 광명역 활성화 대책을 밝힌 것도 속이 보이는 처사다. 그동안 공염불이 돼 온 광명역 활성화를 앞으로 얼마나 진정으로 추진할지도 의문인데다 상황만 모면하려는 미봉책으로 그랬다면 사태만 더욱 악화시킬 뿐이다. 물론 우리시도 광명역 활성화가 제대로 되지 않은데 대해 일정부분 책임을 통감하고 있다.

광명시를 비롯한 7개시와 서울 용산역 등이 영등포역 정차에 대해 반대하고 있어 갈등이 잠복해 있는 상황에서 단 한차례의 의견수렴이나 토론과정도 없이 지역갈등에 불을 지핀 저의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그동안 정치권 일각과 일부 재벌 측에서 영등포역 정차를 부추기며 정부를 상대로 로비를 한다는 의혹이 제기돼 왔기 때문이다. 영등포역 KTX 열차 투입 문제는 지자체간 갈등을 초래할 수 있는 미묘한 사안이다. 사려 깊은 정부라면 공개적이고 투명한 과정을 거쳐 주민들과 협의했어야 했다. 그런데 그 흔한 공청회 한 번 하지 않고 쫓기듯 밀실에서 이번 결정을 추진한 것이다.

더구나 국토부는 반발을 무마하기 위해 11월1일부터 KTX 열차의 광명역 정차횟수를 1일 주 중은 32회에서 37회로 늘리고, 금요일부터 일요일까지는 광명역 출발열차를 4회 신설한다면서 마치 정차횟수를 늘린 것처럼 해명했으나 이는 사실과 다른 것으로 드러났다. 사정이 이러하니 국토부가 이번에 영등포역에 투입되는 KTX 열차는 경부선을 이용해 1일 2회 정차하고 2014년까지 변경할 의사가 전혀 없으며 2014년 호남고속철도가 개통되면 그때 해당 지자체 및 국회의원들과 다시 협의하겠다고 밝혔지만 도저히 믿을 수 없다. 현재 광명시민들을 중심으로 반발여론이 들끓기 시작했다. 국토부가 기존입장을 고수한다면 향후 지역갈등은 걷잡을 수 없게 되고 2005년과 같이 큰 사회문제로 비화될 것이다.

정부가 주민과의 약속을 헌신짝처럼 버린다면 누가 정부정책을 신뢰하겠는가. 국토부는 이번 영등포역 정차문제로 인해 철도정책 나아가 정부 전체에 대한 신뢰를 잃을 수도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정부는 이번 결정을 조속히 철회하고 사태해결에 나서야 한다. 그것만이 신뢰회복의 유일한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