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왕휘 (아주대 교수)
[경인일보=]G20 서울 정상회의의 사전준비를 위한 재무장관·중앙은행 총재 실무회담이 지난주 경주에서 개최되었다. 이 회의에서 참가국들은 보다 시장결정적인 환율제도로 이행하여 정부가 수출을 늘리기 위한 경쟁적 평가절하를 자제하자는데 합의하였다. 우리 정부는 의장국으로서 선진국들과 개발도상국들, 서방국가들과 동아시아 국가들 사이의 합의를 도출하는데 결정적 기여를 하였다고 자평하고 있다.

이런 성과에도 불구하고 G20 서울 정상회의가 우리 정부가 처음에 의도한 것처럼 순탄하게 진행될 가능성은 그다지 높지 않다. 서울 정상회의의 성공을 가로막는 가장 큰 문제는 핵심 의제의 변질이다. 우리 정부는 서울에서 가시적인 성과를 내기 위해 각국간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되는 환율 문제를 의제에서 배제하고자 하였다. 대신에 정부는 국제적으로 광범위한 합의가 존재하는 세계금융제도 개혁을 핵심 의제로 제시하였다.

이를 통해 정부는 그동안 추진해온 국제통화기금(IMF) 재원 확충을 통한 세계금융안전망 강화 방안을 포함하는 서울 합의(Seoul Accord) 또는 코리아 이니셔티브(Korea Initiative)를 부각시키려고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우리 정부의 기대는 실현되지 않았다. 지난 9월 말 만테가 브라질 재무장관은 세계적 차원에서 환율전쟁이 벌어지고 있다고 경고를 하였다. 10월 초에 열린 IMF 연차 총회에서도 주요국들 사이의 환율 조정 문제가 핵심 쟁점이 되었으나, 별다른 해결책이 제시되지 않았다. 그 결과 서울 정상회의에서도 환율 갈등이 핵심 쟁점이 되고 말았다.

환율 갈등은 미국 정부의 강경한 태도로 증폭되었다. 경주회의 직전 가이트너 재무장관은 참가국 대표들에게 세계경제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해 경상수지의 변동폭을 2015년까지 국내총생산(GDP)의 4% 이내로 제한하자는 정책을 담은 서한을 발송하였다. 이 제안에 대해 우리나라를 비롯한 영국, 캐나다, 호주가 지지한 반면, 수출대국인 독일과 일본은 반대하였다. 논란의 핵심에 있는 중국은 이 회의에서 공식적인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그러나 금년 GDP 대비 흑자규모 4.7%, 2015년 15% (IMF 추정치)를 고려할 때, 중국은 비공식적으로 반대의사를 분명히 했던 것으로 보도되었다.

경주회담의 또 다른 핵심쟁점은 미국의 통화정책이었다. 많은 참가국들이 미국의 양적완화정책으로 세계적 차원에서 유동성 과잉문제가 발생하고 있다는 비판을 제기하였다. 미국보다 더 높은 이자율을 유지하는 국가들에 미국 자금이 밀려와 심각한 인플레이션과 자산 거품의 위험이 가중되고 있는 것이다. 이 문제에 노출된 국가들은 금리 인하 정책을 사용할 수 없기 때문에 외환시장에 직접 개입하거나 자본통제를 하고 있다. 이런 비판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이사회는 미국의 경기 침체를 막기 위해 당분간 초저금리를 유지하는 양적완화정책을 유지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환율문제와 통화정책과 같은 핵심 쟁점에 대한 구체적인 실행 방안에 대한 합의 도출에 계속 실패하면서, 서울회담에 대한 국제적 관심과 기대가 줄어들 가능성도 있다. 경주회담에서 공식적인 입장 표명을 자제하던 중국의 왕치산(王岐山) 부총리는 경주회담 직후 가이트너 재무장관을 칭다오(靑島) 공항으로 초청하여 중국측 입장을 설명하였다. 환율전쟁을 최초로 경고한 만테가 브라질 재무장관도 경주회담에 불참하였다. 이런 사실들은 최상위포럼(Premier Forum)으로서 G20의 중요성이 약화되고 있는 징후로 해석되고 있다.

이제 서울 정상회담이 며칠 남지 않았다. 환율갈등의 심화로 우리 정부가 심혈을 기울여 준비했던 서울 합의 또는 코리아 이니셔티브를 전면에 부각시키기 어렵게 되었다. 이는 우리 정부의 잘못이 아니라 국제 정치경제의 갈등구조에서 비롯된 결과이기 때문에 실망하거나 자책할 필요가 없다. 앞으로 남은 기간 동안에 안전하고 편안한 회의 진행을 하는데 더 큰 관심과 노력을 할 필요가 있다. 회의의 성공적인 진행만으로도 우리나라의 국제적 위상과 이미지를 제고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