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중에 컴패션 사무실에서 다시 만난 그녀는 직원이 이름을 물었을 때 자기가 뭔가를 잘못해서 잡으러 온 줄 알고 무서웠다고 말했다. 그 이야기를 하는 바바라의 얼굴이 환해졌다. 하긴 살벌한 뒷골목에서 누군가 아무 이유 없이 관심을 가져준다는 것은 깜짝 놀랄만한 일일 것이다. 웃음이 많아져 처음 봤을 때와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된 바바라를 보며, 역시 사람을 변화시키는 힘은 '관심'이고, 서로를 알아가는 '관계'에서 비롯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 사람들은 생전 만나본 적도 없는,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까지도 IT, 통신 기기들을 활용해 자신의 관계 범위 가운데 집어 넣는다. 이런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도 사람이 사람을 향해 본질적인 변화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영향력을 펼치는 건, 역시 이름을 불러주고 신뢰를 쌓아가는 장기적인 관계에서 비롯된다.
어린이들의 성장에도 이런 관계가 더욱 중요하다. 1952년 시작된 컴패션은 불과 2년도 채 안된 1954년부터 1대1 결연을 통해 어린이 양육을 시작했다.
한국전쟁으로 부모를 잃은 어린이들에게는 단순히 밥을 먹이고 옷을 주는 것, 더 나아가 교육을 시켜 주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한 어린이와 한 후원자 또는 한 가정이 결연을 맺고, 고아들은 후원자를 엄마 아빠라고 부르며 전쟁이 준 상처를 회복했다. 지금은 장년층을 훌쩍 넘긴 수혜자들은 어릴 적 부모라 불렀던 사람들의 사진을 꺼내들며 애틋해 한다.
예전에 비해 우리 주변에는 여러 좋은 일을 하는 NGO 단체들도 많아지고, 역할도 다양해졌다. 사람들 사이에서 이제 나눔은 특별한 일이 아닌, 보통 사람들도 할 수 있는 것으로 인식이 바뀌고 있다.
사회복지체계도 날이 갈수록 좋아지고 있고, 나눔의 시스템도 날로 새로워져 이미 오래 전부터 전화 한 통만으로도 지구 저편 알지 못하는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물론 도움이 필요한 사람은 지금도 여전히 너무나도 많지만, 사람을 돕는 일이, 예전보다는 좀 더 편해졌다는 이야기이다. 그렇다고 해서 관계 맺기까지 수월해진 것은 아니다. 그리고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일이 결핍되어 있는 나눔이 얼마나 실효를 거둘 수 있는지도 살펴봐야 할 일이다.
사람을 돌보는 일은 지금도 손이 많이 가고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들어간다. 이런 사실은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것 같다. 이런 가운데에서도 우리 주변의 어떤 엄마 아빠들은 자녀들과의 관계 맺기를 인간적인 접촉이 아닌 물질로, 또는 자녀들에게 좋은 교육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으로, 또는 많은 투자를 해 다른 자녀들이 갖지 못한 경험을 제공해 주는 것으로 대체하려 한다.
낳아만 놓으면 자란다는 말은 이미 옛날 말이다.
양육의 여러 가지 방법론이 제시되면서 엄마 아빠들은 완벽한 부모가 되어야 한다는 강박증 때문에 더 큰 부담을 느끼게 되는 것 같다. 하지만 훗날 아이가 어떤 어른으로 자랄지 보다는 지금 현재의 관계에 초점을 맞춘다면, 오히려 더 좋은 결과가 나오지 않을까.
어린이들을 돕는 각종 형태의 나눔도 마찬가지이다. 어떤 방식으로 돕는가를 떠나서, 어린이라는 흡수력이 뛰어난 연령대에게는 '관계'는 꼭 필요한 요소일 것이다.
전 세계를 아우르는 좋은 시스템과 정제된 체계를 갖췄다고 해도, 이런 사람 냄새 나는 관계성이 그 과정 가운데 어떻게 녹아날 것인지를 반드시 고려해 봐야 한다. 어린이는 그만큼 소중하고 놀라운 가능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