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여자 태권도 경량급의 간판스타 권은경(25.삼성에스원)이 뜻밖의 사고에 눈물을 흘렸다.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 태권도 여자 53㎏급 준결승전이 벌어진 18일 광둥체육관.
경기에 나서는 권은경의 눈빛은 결연했다.
첫날 대표팀이 뜻밖의 '노골드'로 종주국 자존심을 구긴 터라 이날 나서는 세 명 대표 중 가장 먼저 나가는 선수로서 반드시 금메달을 따내겠다는 의지가 가득했다.
분위기는 좋았다. 권은경은 예선에서 마하마트 누룰 나디아(말레이시아)를 8-2로 제압했고, 8강에서는 자프라 자데(필리핀)을 15-6으로 완파한 터였다.
준결승 상대는 금메달 전선의 최대 난적으로 꼽히는 퐁스리 사리타(태국). 지난해 세계선수권대회 준결승에서 패배를 안겼던 퐁스리만 꺾는다면 자신있게 금메달을노려볼 만했다.
권은경은 1회전에 먼저 몸통 공격을 허용해 1점을 내줬지만, 2라운드 23초에 번개같은 오른발 돌려차기로 퐁스리의 머리를 정확히 때려 3점을 얻었다.
잘 지키기만 하면 결승전 진출을 노릴 수 있었지만, 경고 누적으로 1점을 준 데이어 3회전에 1점을 다시 내주면서 경기는 연장으로 접어들었다.
공격적으로 퐁스리에게 달라붙던 권은경은 동시에 발차기를 주고 받더니 무릎을부여쥔 채 매트 위에 쓰러졌다.
오른발차기를 하다가 무릎이 꺾여버린 것이다.
심하게 꺾인 무릎은 도저히 몸을 지지할 수 없을 만큼 고통스러웠지만 권은경은오뚝이처럼 계속 일어났다.
여러 차례 코치진과 응급요원에게 치료를 받으면서도 권은경은 포기하지 않았다.
하지만 마지막으로 일어났을 때 권은경은 이미 다리를 땅에 대지도 못했다.
결국 한 바퀴 몸을 비틀다가 매트 위에 쓰러진 권은경은 다시 일어서지 못했다.
양양 임호초등학교 때 처음 태권도를 시작한 권은경은 중학생 시절부터 각종 전국대회를 휩쓸었고, 고등학교와 대학 시절을 거치면서 기량이 만개해 국제무대에서도 정상을 지켜 온 여자 태권도 경량급의 에이스다.
2006년 아시아태권도선수권대회 1위, 도하 아시안게임 1위, 2007년 유니버시아드 우승 등 권은경은 2000년대 중반부터 태극마크를 달고 빛나는 업적을 쌓아 왔다.
그러나 2008년 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 아쉽게 3위에 그친 권은경은 베이징올림픽 선발전에서도 탈락, 태극마크를 달지 못했고 2009년 동아시안게임에서도 2위에 머무는 등 아쉬움을 남기고 마치는 대회가 점점 많아졌다.
지난 4월 대표선발전에서 태극마크를 획득해 2연패에 도전할 기회를 얻은 권은경은 "4년 전 경험해봐서 아시안게임 우승이 얼마나 좋은지 누구보다 잘 안다. 여자선수로는 2연패가 처음이라니 욕심이 생긴다"며 전의를 불태웠지만, 결국 불의의 부상이 발목을 잡고 말았다.
매트에 얼굴을 파묻은 채 아픔과 아쉬움이 뒤섞여 흐느끼던 권은경은 들것에 실려 나가면서도 터져나오는 울음을 참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