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폰이 출시되었을 때 미국인들은 판매 당일은 물론 며칠 동안 긴 줄을 서서 상품을 사는 진풍경을 연출하였다. 상술에 속아 소비자가 농락당했다고 간주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만큼 아이폰은 예술이라고 탄복할 정도로 기능이 탁월하였으며, 상품을 능가하여 소비자가 인정하는 기술의 혼이 들어 있었다. 소비자에게 고가의 값을 지불하고 상품을 습득하면서도 상품이 아닌 그 이상의 것을 획득하는 듯한 기분을 선사한 것이다.
그 후 유사한 스마트 폰들이 다수 출시되었지만 아이 폰의 신화를 크게 능가하지는 못하였다. 결과적으로 잡스는 소비자가 아이폰을 가짐으로써 흡사 첨단예술을 소유한 것 같은 기분을 느끼게 해 준 것이다. 그리고 테크놀로지를 누리면서 시대를 리드하는 신세대들의 신화에 가담하게 해주는 메신저를 자처하였다.
1960년대에 불길처럼 등장한 블루진은 단순히 청바지가 아니라 그 시대를 대변하는 문화였다. 당시 젊은이들은 청바지를 입은 것이 아니라 그 시대의 아이돌을 걸치고 다녔으며, 오늘날에는 세대를 뛰어넘는 광범위한 문화적 산물이 되었다. 그러므로 청바지를 입는 소비자는 하체를 가리는 것이 아니라 예술과 문화를 입는 것이다. 오늘날 청바지는 싸구려 이미지가 아닌 문화의 값을 주장하기 위하여 고급화, 패션화 되고 있으며, 그것을 입는 자들에게 흡사 청바지 문화로의 참여의 길을 열어주는 것으로 인식된다.
런던의 테이트갤러리나 파리의 퐁피두센터, 뉴욕현대미술관에는 연 500만 명의 관객이 몰린다. 이것은 단순히 대도시 문화공간이 누리는 특수가 아니다. 이들 도시보다 인구가 훨씬 많은 서울의 문화공간들과 그 관객 수를 비교해보면 현실은 너무도 자명해진다. 그들은 나름대로 관객에게 예술성, 천재성을 인정받을 만한 기막힌 공간을 창조하였고, 단순한 전시장이 아닌 사람을 부르는 지독한 매력을 개발한 것이다.
시장경제와 소비중심사회는 시장과 소비자가 그 중심에 있지만 그것을 지탱하는 뿌리는 대중과 대중문화이다. 대중의 속성, 대중문화의 흐름이 시장과 소비를 좌우하는 것이다. 오늘날 대중이 창조해 내는 영웅과 아이콘들은 때로는 아이돌을 만들어내며, 때로는 그 많은 상품들 중 일부를 독특한 예술품으로 만들어내는 기가 막힌 사례들을 보여준다. 이러한 경우는 비단 상품 뿐 만이 아니라 심지어 문화예술이벤트까지 이에 적용된다.
지난 9월 초 광주비엔날레 개막식을 전후하여 광주 일원의 호텔이 초만원을 이룬 적이 있다. 아트페어와 시기가 겹친 탓도 있지만 1천500여 명의 손님들이 한꺼번에 지구촌에서 몰아닥쳐 방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였다. 이는 광주비엔날레 15년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기 때문에 의미는 남달랐다. 그렇다고 광주비엔날레가 베니스처럼 비엔날레 특수를 누리는 것은 물론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순한 광주의 전시상품이 아닌, 그 무엇을 애써 가꾸는 과정에서 찾아온 중요한 신호로 받아들이고 싶은 것이다.
오늘날과 같은 소비사회는 소비자가 시장의 중심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상품 그 자체가 소비자들에게 발언할 수 있는 상품중심주의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상품중심주의란 상품이 광고 이상의 독특한 질과 기능을 가져야 하며, 소비자들의 입소문이 광고를 압도하는 기능중심주의적 역할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오늘날 광고시장에서 업주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분야가 소비자들이 결정하여 시장을 리드하는 바로 '입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