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주목한 것은 이벤트행사가 아니라 '개점 80주년'이란 표현이다. 신세계백화점 본점은 일본 삼월(三越)백화점이 일제 강점기인 1930년에 오픈한 경성지점에서 비롯되었다. 한국에 있는 일본인 고객들을 겨냥해서 당시 일본상권의 중심지였던 서울 명동 입구에 국내 최초로 문을 연 것이다. 경성점은 1945년 광복이후 소위 귀속(歸屬)기업으로 한국인 관리 하에서 동화백화점으로 운영되었다. 1957년 9월에는 강의수 등이 인수해서 운영하다가 1963년 동방생명(삼성생명)과 함께 삼성그룹에 재차 인수되어 그해 11월 12일에 상호를 신세계로 변경해서 오늘에 이른 것이다. 따라서 삼성이 인수했던 시점을 감안하면 신세계백화점의 역사는 올해로 정확히 49년인데 '개점 80주년'이라니. '개점'이란 상점을 내어 처음으로 영업을 시작하는 것을 의미하는 바 자칫 신세계가 80년간 계속 경영한 것으로 오해할 수도 있는 탓이다.
신한은행의 경우는 더 이상하다. 1982년에 설립된 새내기인 신한은행이 국내 최고(最古)의 은행으로 홍보중이니 말이다. 2006년에 100년 역사의 조흥은행을 인수한 것이 계기였다. 주지하는 바처럼 조흥은행은 1897년 2월에 설립된 한성은행의 후신이다. 1995년 11월에 최고법인기업인증을 받았다며 자랑중이나 신한은행의 '100년 은행'타령은 쉽게 납득되지 않는다.
그러나 이 정도는 애교에 속한다. '하이트맥주'로 유명한 하이트그룹은 아예 창립연도를 1933년으로 역사를 왜곡하고 있다. 하이트맥주의 모체는 1933년 서울 영등포에서 대일본맥주의 자회사로 설립된 조선맥주다. 조선맥주는 광복후 귀속기업으로 1952년에 민덕기가 불하받아 운영하다가 1966년 8월에 현 오너가 인수했던 것이다. 따라서 하이트그룹의 실질적인 역사는 44년밖에 안된다. 한국타이어는 1941년에 설립한 것으로 표기하고 있으며 현대제철은 1953년 6월10일 대한중공업 설립일을 창업일로 간주하고 있다. 필자가 과문한 터여서 전모를 파악할 수는 없으나 이런 식으로 역사를 날조한 기업들이 상당할 것으로 추정된다.
이런 식이라면 롯데그룹의 역사는 43년이 아니라 롯데백화점이 인수한 미도파백화점의 전신인 정자옥(丁子屋)이 1938년에 설립되었던 만큼 72년이 되어야 한다. 크라운베이커리의 역사도 63년이 아닌 74년이 되어야 한다. 1936년에 일본인이 설립한 영강(永岡)제과를 해방직후 간판을 바꿔달은 해태제과를 크라운베이커리가 인수한 때문이다. 1933년에 설립된 소화(昭和)기린맥주 경성지점을 불하받아 재발족한 오비맥주의 역사는 58년이 아니라 77년이며 1940년에 수원에서 일본인들이 설립한 선경직물의 인수에서 비롯된 SK역사는 57년이 아닌 70년이 된다. 애경그룹이나 오리온·동양시멘트의 경우도 일제 강점기에 설립된 귀속기업들을 인수해서 발전해온 만큼 창업시점을 귀속기업 설립시기로 끌어올려야 할 판이다. 그럼에도 롯데·크라운·오비맥주·SK·애경·오리온·동양시멘트 등은 창업시점을 피인수기업의 설립시점으로 소급하지 않고 있어 너무 대조적이다.
소비자들에게 유구한(?) 역사와 전통을 강조함으로써 회사의 브랜드 이미지를 제고하려는 소치로 이해된다. 그렇다고 창업 혹은 개점 시기를 피인수기업의 설립시점으로 늘리는 식으로 왜곡해야만 했나. 역사에 몰이해한 소치 탓인지, 알고도 의도적으로 그러는지 그 속내는 알 수 없으나 도무지 납득되지 않는다. 일본강점기의 어두웠던 역사를 애써 감추려는 우리네 정서와 배치되는 것이어서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중국이 동북공정 운운해서 한국민들의 심기가 불편한 상황이다. 자신들의 역사를 왜곡하는 기업들을 소비자들이 어찌 생각할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