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왕휘 (아주대 교수)
[경인일보=]세계금융위기 이후 지속된 경기침체를 극복하기 위해 미국 오바마 정부는 추가적인 재정부양책을 고려해 왔다. 재정 적자의 확대를 우려하는 공화당의 강력한 반대 때문에 이 정책이 의회에서 승인될 가능성이 거의 없게 되었다. 재정정책의 사용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벤 버냉키 연방준비제도 이사회 의장은 실업률 감소를 명분으로 적극적인 통화정책을 결단하였다. 이를 위해 미국 중앙은행은 지난달부터 6천억달러의 미국 국채 매입을 통해 금융시장에 유동성을 제공하는 양적 완화(quantitative easing)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미국의 양적 완화 정책은 국내외적으로 많은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이 정책이 이번 달 초에 있었던 미국 중간선거 직전에 발표되었다. 이 때문에 이 정책의 결정과정에 경제적 논리보다 정치적 고려가 더 큰 영향을 미쳤다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번 중간선거에서 집권당인 민주당의 참패는 이 정책의 정치적 효과가 별로 없었다는 점을 확인시켜 주었다.

또한 양적 완화 정책의 경제적 효과에 대해서도 회의적인 견해가 지배적이다. 재정정책이 정치적으로 불가능한 상황에서 통화정책이 유일한 대안이라는 점을 인정하는 경제전문가들조차 이 정책이 경기부양에 실패할 위험성이 높다고 경고하고 있다. 1990년대 이 정책을 도입한 일본이 가장 대표적인 실패 사례다.

미국 밖에서도 양적 완화 정책은 환영받고 있지 못하다. 신흥시장국가들은 미국이 이 정책을 통해 달러를 수출하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이 정책을 통해 유동성을 공급받은 미국 금융기관들이 상대적으로 높은 수익률이 예상되는 신흥시장국가들의 주식과 채권을 사들이고 있는 것이다. 미국으로부터 밀려들어온 투자자금은 이 국가들의 금융시장을 과열시켜 자산거품을 일으키는 데 일조하고 있다.

이런 문제들을 해소하기 위해 국제통화기금(IMF)은 그동안 금기시해 왔던 자본통제 정책을 암묵적으로 용인하고 있다. 태국은 급격한 자본 유입을 막기 위해 지난달 해외투자에 대해 15% 원천과세하기로 결정하였으며, 다른 동남아시아 국가들도 이와 유사한 조치를 고려하고 있다.

자산거품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통화 가치의 급격한 평가절상이다. 국제상품시장에서 가격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환율을 저평가해 온 동아시아 국가들의 통화 가치가 올해 10% 내외 상승하였다. 일본 엔화는 15년 이래 최고점인 1달러 81엔까지 도달하기도 하였다. 엔화 강세로 수익률이 악화된 일본 기업들은 일본 정부에 환율 안정을 위한 조치를 요구하였다. 이에 일본 정부는 외환시장에 개입하였으나, 큰 효과를 보지 못하였다.

이에 일본 정부는 엔화 강세를 용인해 온 미국뿐만 아니라 수출 시장에서 경쟁국인 한국과 중국에 정책 변화를 촉구하였다. 특히 간 나오토 총리는 엔화에 비해 한국 원화가 훨씬 저평가되어 있어 한국 기업이 일본 기업에 대해 가격경쟁에서 우위를 확보하고 있다고 지적하였다. 노다 요시히코 재무상은 경주 G20 재무장관·중앙은행 총재회의 직전 한국이 외환에 수시로 개입하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한국은 G20 의장국으로서 그 역할을 엄격히 추궁당할 것"이라고 비판하였다.

자산거품과 평가절상이라는 양적 완화 정책의 부작용이 심각해지면서, 국제적 차원에서 미국은 자국 경제를 살리기 위해 세계경제를 무시하고 있다는 비판이 고조되고 있다. 이 때문에 G20 서울 정상회담에서 중국의 위안화 평가절상을 관철시키려는 미국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갔다. 미군에 안보를 의존하는 독일과 일본조차 양적 완화를 통한 달러 수출이 자국 상품의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논리로 미국의 평가절상 압력에 대응하였다.

우리나라에서도 양적 완화 정책의 부작용이 서서히 드러나고 있다. 해외자본의 급격한 유입으로 증시가 1년 전보다 12% 이상 급등했고, 원화도 올해 5% 정도 평가절상되었다. G20 서울 정상회담에서도 신흥시장국가들의 미국 비판으로, 자본통제 정책과 통화시장 개입을 할 수 있는 여지가 넓어졌다. 국제적인 비판에도 자국의 이익에 부합하는 정책을 꿋꿋이 추진하는 미국처럼, 우리 정부도 적극적인 대책을 실행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