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인일보=이현준·김성호기자]24일 오후 해양경찰 등이 제공한 배로 연평도를 빠져나온 사람들의 표정엔 아직도 하루 전의 '공포'가 남아있었다. 배에서 내린 일부 노인들은 지친 듯, 부둣길에 털썩 주저앉았고 그들을 기다리던 가족들의 눈에선 눈물이 고였다. 이들이 대피소에서 보낸 하루는 악몽의 시간이었다.
■ 공포와 추위 그리고 배고픔=김기권(52)씨는 "공포에 떨며 밤을 지새웠고, 무사히 살아나가기만을 바랐다"며 "전기도 안 들어오고, 제대로 먹지도 못했지만 살아나가는 게 우선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조순애(47·여)씨는 "온 산이 다 불이 붙어 그 불의 화기가 대피소 통로에서도 느껴져 '이대로 죽나보다' 생각했다"며 "21년간 살아온 집인데, 이제는 다 없어졌다"고 탄식했다.
아직 연평도에 남아있는 김재현(73)씨는 "아이들은 포 소리에 놀라 울고, 엄마들은 아이 귀를 막아줬다. 악몽 같은 하루였다"며 "전기를 어디선가 끌어다가 한두 집에서 가져온 전기난로를 켜고, 군에서 모포를 가져와서 조금 나았지만 불안하니 잠을 잘 수 없었다"고 말했다.
■ 열악한 연평 대피소=연평도 대피소 19곳은 모두 4등급이다. 단독주택 등 소규모 건물 지하 수준으로, 별도의 시설설치 기준도 없다. 화장실과 세면장, 공기 여과장치 등을 갖추도록 돼 있는 1등급 대피소와는 비교하기조차 어렵다.
이들 시설은 또 만들어진 지 30년이나 지나 많이 낡아 있는 데다 피폭시 안전성에 대한 의문도 끊임없이 제기되는 상황. 이 때문에 인천시 옹진군도 지난 6월 서해 5도 지역의 안보 태세 유지를 위한 주민 대피소(방공호) 현대화 사업을 정부에 공식 건의한 상태였다. 하지만, 이렇다 할 조치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남북간 첨예한 대립이 계속되고 있지만 대피소는 열악하기만 한 연평지역. 지역 주민들의 불안감은 더욱 커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