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용완 (논설위원)
[경인일보=]연평도 주민들의 탈출기가 9일째 이어지고 있다. 포격 도발 첫날인 23일 옷가지만 챙겨 어선 등을 타고 두려움에 떨며 고향을 떠나 1일 현재 연평도에는 해병대와 최소 인원만 남아 적막강산이 됐다. 고향을 떠난 이들 대부분은 인천의 한 찜질방에 머물고 있다. 피란민 임시 숙소로 지정된 곳이지만, 정부가 아닌 이 업소 대표가 무료로 숙식을 제공해 왔다. 하루 100여명 정도의 예상이 빗나가 소문을 듣고 온 탈출민이 1천명이나 달한다. 그러다 보니 사랑의 온도계가 필요치 않은 훈훈한 곳이긴 하지만, 한계치를 넘어 정말 전쟁통 피란민 수용소가 됐다. 주인도, 연평도 주민도 모두가 생 고생이다.

경험을 통해서 배우고 실수를 줄여 나간다. 남북관계가 주변 환경 등으로 인해 일방적으로 밀어붙일 수 없는 특수상황이고, 확전시 그 피해 또한 짐작할 수 없다. 그러나 북한의 도발은 충분히 경험했고, 여러 번의 도발로 많은 인명과 재산 피해 등 엄청난 결과를 가져왔다. 경험이 적은 것도 아닌데 전혀 학습효과라고는 찾아 볼 수 없는 것이 연평도 사태다. 도발 첫날 경인일보 기자가 확인한 대비태세를 점수로 계산하면 0점에 가깝다고 해야 한다. 대피소로 몸을 피한 주민들은 '악몽'같은 시간이었다는 말로 대신했다. 공간만 확보돼 있을뿐, 보온장비도 조명시설도 비상식량도 없었다. 잠시도 지낼 수 없는 곳이었다. 30여년전 구축한 콘크리트 구조물만 덩그란히 지키고 있는, 접적지역 대피소가 아닌 남북통일로 용도가 폐기된 역사적 유물로, 귀감삼아 남겨 둬 관광상품화한 듯한 분위기다.

국방은 무기의 첨단화만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지켜야 할 대상이 국민이며 국토다. 전쟁상황이 아닌 국면에서, 불가침조약과 정전협정이 엄연히 존재하는 현실에서 국민과 장병의 희생이 되풀이 돼서는 국방에 실패한 것이며, 자주국방도 멀었다고 봐야 한다. 혹자들은 연평도를 비롯 북한과 마주한 서해 5도에 거주하는 것만으로도 애국이라고 말한다. 이들이 고향에서 나오고 있다. 직격탄을 맞은 연평도 주민은 물론, 백령도·소청도 등 서해 5도 주민들이 동요하고 있다. 6·25전부터 이 곳에서 살던 분들도 있다고 한다. 생사가 달릴 폭탄세례에서 벗어나기 위해 고향을 등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면, 그들을 향해 애국을 말해서는 안된다. 지옥같은 상황이 벌어지기에 앞서 살펴야 했고, 그 곳에서 안정을 찾을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갖췄어야 했다. 그 것이 애국자에 대한 예우다.

국민을 위한, 접적지역 주민을 위한 매뉴얼이 없다. 대표적인 사례가 찜질방 난민생활이다. 더 이상 학습을 위한 경험은 없어야 한다. 말말말로 국민들을 어지럽게 해서는, 현실 직시보단 잘잘못을 따져 시간만 낭비해서는, 상황 재현은 기필코 막겠다는 의지를 믿지 못한다. 당정이 한 목소리로 지원특별법을 말하고 있지만, 근본적인 해결대책은 없어 보인다. 노후주택 개량을 위한 보조금지급, 고등학교 수업료 등 지원 강화, 농업소득보전, 서해5도 주민에 대한 국가차원의 일반적 보상금과 정규생활 지원금 지급, 각종 공공요금 할인 등이 주내용이다. 이 것만으로는 이주(移住)라는 극한 상황까지 생각하고 있는 주민들에겐 위로가 될 수 없다. 북한의 도발로 인한 불안을 해소하는 대책이 나와야 한다. 그 것은 상황 대처방안이 둘이 아닌 하나여야 그나마 가능하다.

대통령은 담화를 통해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지 못한 책임을 통감한다고 했다. 정부와 군을 믿고 힘을 모아 달라고 호소도 했다. 하나된 국민이 최강의 안보이며 백마디 말보다 행동으로 보일 때라는 현실인식에는 많은 국민들이 충분히 공감할 것이다. 북한이 두려워하는 최고 단계가 거기에 있다. 정부도 더는 물러 설 곳이 없으며, 믿음이 깨지면 서해 5도에는 군인만 남게 될 지도 모른다. 지켜야 할 주민이 국민이 거기에 없게 된다. 노숙자가 되더라도 돌아가지 않겠다고 한 연평도 주민의 비통함에서 뼈저리게 느껴야 한다.